조국장관 사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해 주는
"양질전환의 법칙"에 대한
이완배 기자의 이야기는
위로도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도 준다.
좋은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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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사회의 변화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2019. 10. 16
조국사임 관련 얘기...
사회변화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나 살펴보자.
한국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의 변화
1980년1월4일을 100으로 잡고, 상대적인 주가 추이로 보면 된다.
지금은 코스피 지수가 2000이 넘는 것이 어색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코스피지수의 마지노선이 1000~1100 사이였다.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는 그동안 거의 400에서 1000사이였다.
이 사이를 수십년째 왔다 갔다 했다.
코스피 지수의 장기 변화 그래프를 보면,
100부터 시작을 해서 조금씩 증가를 하다가
1980년대 후반에 1000을 처음 도달했다가
확 꼬꾸라져서 500근처까지 폭락을 한다.
이게 1000선을 깨보려는 1차 시도였는데 실패로 돌아간다.
1000선을 넘으려는 2차 시도가 1995년에 있었지만,
1995년 살짝 코스피지수 1000선에 다시 도달하더니,
IMF 폭격을 맞고 270까지 다시 폭락했었다.
1999년말 ~ 2000년초(it열풍 있는 시기에) 주가지수 1000을 넘으려는 3차 시도가 있었다.
다시 1000넘는가 하다고 다시 또 꼬구라졌었다.
2002년에 4차 시도,
이때도 943까지 올랐는데, 또실패. 56 0선으로 다시 추락.
2004년에 다시 5차 시도,
950까지 올랐다가, 다시 500선으로 추락
이때까지만 해도 1000~1100사이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관념들이 있었다.
증권가에서 전문가들도,
우리나라는 떄려죽여도 500~1000선 박스권에서 맴돌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500선에서 주식 샀다가 1000선에서 팔는 전략이 일반화 되었었다.
왜 이런 생각이 강화되는가 하면
사람들이 주식을 많이 사면 오르고, 팔면 떨어지게 되는데,
주가가 1000 근처에서 꼬꾸라지는 양상이 계속 반복되니까
사람들 마음에서 1000근처 오면 팔자는 심리가 작동.
그래서, 경제가 아무리 좋아져도, 주가지수가 1000근처에만 오면 팔자는 심리 작동.
그런데, 2005년에 마침내 한국 증권 역사에, 대역사가 이루어진다.
2005년에 주가가 1000선으로 치솟는데,
그때 증권가 분위기는 "이번에도 1000선을 못 넘을 것" 이었다고.
증권전무가 1000명중 999명은 "1000전에 꼬꾸라져"라고 예상.
그런데, 2005년 연말에 1300을 뚫어버렸다.
드디어 1000의 벽이 무너진 것이다.
25년만에 기록이다.
심지어 이것이 거품이 아니었던게,
다음해 2006년에도 1년 내내 1400선을 유지했고,
2007년에 다시 폭팔적인 상승세를 타서 7월 2000선을 돌파했다.
그동안 25년동안 500~1000사이를 맴돌던 주가가 역사적인 점프를 해서
2000선에 안착을 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재벌들은 참여정보에 고마워해야 한다.
재벌들은, 이때 재산을 주식으로 5배 이상 불렸다.
우리나라 보수정권 어떤 누구도 하지 못했었던 증시 점프를
참여정부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 2003년 2월 25일–2008년 2월 24일 )
자본시장 활성화가 이루어진 것도, 참여정부 시대에 완성된 것이다.
재벌들은, 이때 재산을 주식으로 5배 이상 불렸다.
압도적으로 민주정부 떄 주가가 크게 올랐다.
김영삼정부때 IMF터져서 230까지 떨어졌은데,
김대중 정부에서 1000이상으로 올려놓고,
노무현 정부에는 역사적인 점프를 통해 2000선까지 올렸음.
우리나라 역대 최대 코스피 지수가 2,607인데,
이것도 작년 1월 문재인 정부 때 역대 최고 기록이 달성된 것이다.
그런데, 왜 뜸금없이 주식시장 얘기를 했냐면,
2005년 당시 자신이 증권기자였는데,
자신도 그때 주식이 1000을 절대 못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는데,
한 번 훅하고 넘어가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폭락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종합주가지수 2000선은 당연시 되었다.
그래서, 그때 주가지수가 1000이 마지노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얘기하면,
요즘 사람들은 잘 믿지를 않는다.
그런데 진짜 그때는 1000이 마지노선이었고, 그런 상태가 25년동안 계속 되었었다.
여담이 길었는데,
그럼, 오늘 주제로 돌아와서..
마르크스가 정립한 정치 경제학에서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 법칙은 정치/경제학의 법칙이라기 보다는
자연법칙에 가까운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변증법이라는 체계를 확립하면서
철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고,
마르크스는 이 자연 법칙이자 철학법칙을
경제학으로 끌어들인 공로가 있는 것이다.
'양질 전환의 법칙' 은
사물의 양과 질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물이 한컵에서 두컵으로 증가되는 것은 양의 변화이지만,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것은 질이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사회 변혁이라는 것은
양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질이 변하는 것이다.
예를들어서,
노예제 사회가 봉건제 사회로 변하고,
봉건제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고,
이런식의 역사 발전은,
노예숫자가 늘고 줄어들거나 봉건 지수 숫자가 늘고 주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지배구조가 질적인 거대한 변화를 이룬 것이다.
질의 변화가 사회의 본질적인 변화라는 건데,
본질의 변화는 혁명적 변화일텐데,
이게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면,
헤겔은 "양적인 변화가 계속 누적되면, 질적으로 변한다" 라고 설명.
쉽게 설명하면,
어렸을 때, 운동회 할 때, 박깨기를 했는데
오자미를 수없이 던지다 보면, 어느순간 박이 터진다.
이렇게 박이 터지는 게 질의 변화이다. 혁명적 변화이다.
이 혁명적 변화는 오자미를 계속해서 박으로 던져야 박이 터지는 것이다.
오자미가 박을 때리는 양이 수십번 수백번 누적이 되면
갑자기 한 순간에 펑하고 터진다.
이떄 주의할 점이 있다.
질이 변하는 혁명적 변화는 매우 극적이다. 펑하고 터진다.
그런데, 그 극적인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양질 전환 법칙의 특징이다.
오자미로 아무리 박으로 던져도, 터지기 직전까지는 박은 멀쩡해 보인다.
"저게 언제 터지냐, 저거 잘못만든 거 아니야"
이런 의심이 들 때 쯤, 수많은 오자미의 구타가 누적이 되서,
갑자기 펑하고 터지는 것이다.
물이 수증로로 바뀌는 질적 변화도 마찬가지다.
99도까지는 외견의 변화가 없다가
가열이 계속 누적되다 보면,
100도가 되는 순간 액체가 삽시간에 거짓말 처럼 기체로 바뀌게 된다.
헤겔도 그렇고, 마르크스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사회 변혁은 직선으로 점차 바뀌지 않는다.
헤겔과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바뀐다.
한동한 평평하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가, 변화는 한순간에 훅하고 발생.
처음에 주가 얘기를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25년동안, 1000의 고지를 넘으려고 5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었다.
그래서 1000선을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절망할 무렵에,
누구도 예상 못했던 방식으로, 주가가 훅하고 2000선을 돌파했다.
핵심은, 이전에 1000선을 깨기 위한 5번의 실패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헤겔은
"양이 차지 않으면 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로 이 법칙을 설명.
오자미로 수백번 박을 떄리는 실패가 있지 않으면,
펑하고 박이 터지는 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데,
실패의 양이 어마무시하게 많아야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천재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엄청난 능력자가 천재적인 일을 착착착 해낸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0세기 최고의 화가가 피카소인데,
그림 한 점에 수백억원, '알제의 연인들'은 2000억원에 팔렸다.
그러면, 피카소가 그리면 다 수백억원짜리 그림이 되는 걸까?
천만에요.
피카소가 평생 그린 그림이 유화만 15,000점이다.
데생만 34,000점. 판화가 10만점.
다 함치면 얼추 15만점의 그림을 그린것.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1년이 365일인데, 100년이 36,500일이다.
15만점을 그리려면, 하루에 5점을 100년동안 그려야 하는 양이다.
판화 10만점은 여러장 찍는 거니까 이것을 뺸다고 해도,
유화, 데생, 조소만 6만점인데,
이것도 하루에 2점씩 100년을 그려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피카소가 어마무시하게 그려댄 것이다.
그럼, 피카소는 왜 이렇게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림이 잘 안되는까 그렇게 그림을 그렸겠지요.
그리면서 얼마나 절망을 했겠는가? 왜 그림이 이렇게 잘 안되는지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러한 엄청난 양이 누적되다보면,
언젠가 질적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오늘날 피카소이다.
엇그제(10/14) 조국장관이 사임을 했는데,
조중동, 자한당은 신났다.
많은 민주 시민들은 멘붕에 빠졌다.
저는 이문제의 본질은
누구를 지키고 안지키고의 문제가 아니고,
검찰개혁을 어떻게 이루어 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싸움은 원론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지적으로 보면,
이번 싸움은 이기지 못한 것 같다.
왜냐면 상대의 목표가 오로지 '조국낙마'에 화력을 총 동원했기 떄문이다.
그러면, 사실,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 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되지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고,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락보고 있다면,
누군가 비를 맞을 때, 함꼐 비를 맞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그동안 조국 장관의 호불호를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한번도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청문회에서 "나는 사회주의이면서 자유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말한 조국 장관에 대한 연민, 동지애가 상당히 컸었다.
그래서, 사퇴하는날 상당히 슬펐다.
"그런데, 슬픔과 아쉬움은 딱 이틀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슬퍼할 시기이고 그럴 권리가 우리들에게 있다.
그런데, 툴툴 털어 내야 한다고 생각...
검찰개혁뿐 아니라 이사회에서 바꿔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주변에서 현실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할 때,
제가
"세상은 바뀌고 우리는 할 수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다고는 했지
쉽다고는 안했다" 라고 말하고 한다.
누적된 투쟁의 양기 언젠가는 반드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계속된 실패는, 양의 누적을 포기하게 만들기 쉽다. 힘드니까요.
그만큼 질의 변화가 늦어진다.
이틀 정도 소주 한 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약간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삼일째부터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포기하지 않고 자꾸 두드리면,
언젠가는 훅하고 사회가 변화한다.
양이 누적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처럼 훅하고 사회가 바뀌는 시점이 온다.
많은 분들이 우울하셨을 텐데
조금만 더 심란하기로 하고,
금방 다시 훌훌 털어내서 우리 민주 시민들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 온것처럼
오늘부터는 또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함께 고민하고 싸워 나갔으면 좋겠다.
더 두드려야 더 빨리 변할 테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오늘, 양질전화의 법칙을 통해서
사회변화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