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송 내용은,

전에는 미처 못들었던 내용인데, 

한 참 지나서 이제야 듣게 되는 얘기다.

 

이번 얘기는 의미 심장한 얘기들이 많이 있다.

물론, 

이사회를 살면서,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또한 노력을 많이하면 성공 가능성이 많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도, 열심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이 성공도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제가 느끼는 점은, 

노력이 의미없다가 아니다.

 

노력의 결과에 따라 공정하게 결과가 나오는 사회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공정하게 결과가 나오는 사회가 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충분히 많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공정한 기회조건에서,

정상적인 노력을 거의 안하고도, 

성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부모의 백으로

불공정하게 성공을 독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일부 사실만으로, 

성공하려면 무조건 노력하라,

성공을 못한 것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특정계층의 노력없은, 불공정한, 사회적 성공을 방치해 두고,

이러한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의 비효율 불합리의 결과를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의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공정을 해소하고, 사회를 좀 더 공정하게 만들고 나서, 

일반 개인들에게 노력을 하라고 해야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정말 노력의 결과에 의해서 

공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고, 

사회가 훨씬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이, 

부모의 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 100% 반영되어서, 

공정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 질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더 효율적이고, 

훨씬 더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많이 성공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공정한 사회에서는 

훨씬 훨씬 더 많은 노력하는 사람들이 성공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노력하는 10,000명 중에 1명이 겨우 성공하는 수준은 정상이 아니다.

 

5천만명중에 5,000명이 성공하면 많이 성공한 것일까?

우리는 5천 명의 성공 스토리, 성공 신화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한 정도만큼은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10000명이 노력하면, 10000명이 모두 성공해야 한다.

자신이 노력한 순준만큼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공정하고 행복한 사회이다.

 

불공정한 사회의 문제점을 방치하고, 

그로 인해 생긴 수 많은 실패의 책임을, 

단지, 개인이 노력이 부족했다고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좀 더 공정한 사회가 된다면,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노력하는 우리 모두는

성공할 자격이 있다.

 

 

이 새로운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과

"만족지연 능력은 성공과 무관하고, 성공은 오히려 부모의 경제력과 관련이 많다"

라는 특권과 불공정이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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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돌아온 이완배 - 조선일보 손녀, 반드시 성공(!)한다

2018. 12. 3

김용민TV

구독자 33만명

[경제의 속살]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 조선일보 손녀, 반드시 성공(!)한다

 

 

15분을 기다린 아이들이, 기다리지 못했던 아이들에 비해서,

SAT에서 평균 210점을 높게 받았다는 조사 결과.

또한 비만률도 훨씬 낮고, 대인관계도 좋고, 범죄율도 현저하게 낮았다고 조사됨.

즉, "15분 기다렸던, 만족지연능력이 있는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훨씬 성공했다" 가 이 실험의 결론.

 

월터미셜교수의 마시멜로 테스트 실험 결과의 결론인,

"노력하면 성공한다, 참으면 성공한다" 

이러한 결론이 별로 마음에 안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안든다고 실험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실험결과를 안좋아 했던 이유는, 

셀딜 멀레이너선 이라는 행동경제학자의 연구 결과가 근거이다.

인내심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훈련의 결과가 아니다.

 

경제적인 풍요/빈곤 여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

가난한 사람일수록 인내심이 약한 경향이 있다.

즉, 만족지연능력이 부족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

 

빈곤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인내의 역량은 절대적으로 빈곤층에게 불리하다.  

 

 

최근의 새로운 마시멜로 테스트 실험 결과.

2018년 6월에 기존의 결론을 완전히 뒤집는 새로운 실험 결과가 나왔다.

 

미셸 교수의 기존 연구는,

표본이 100명이 안된다. 너무 작다

더구나 통계적 가치가 있는 표본이 아니고, 그냥 자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아이를 대상으로 한것.

 

그래서, 새로운 연구는 표본을 900명으로 늘려서 진행

표본을 선정할 때도, 인종, 민족, 부모의 교육수준, 부모가 부자냐/가난하냐을 다 고려해서 

통계적 가치가 있도록 표본을 선정.

 

그리서 이 900명에게 똑같은 마시멜로 테스트를 하고, 

이 900명이 성인이 되었을 때, 

만족지연능력, 인내심이, 

사회적 성공과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 실험을 함.

 

새 실험 결과는, 기존의 실험 결과와 완전히 달라진다.

새실험의 결론은, 

 

그렇다면, 

인내심이나 만족지연능역이 성공요소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요인일까?

 

즉, 만족 지연능력의 여부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

 

마무리 노력을 해서 만족지연능력을 길러도, 

결국은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이 성공하게 되는 것이 

현 사회 시스템이라는 현실.

 

이 손녀는, 욕구조절이나 만족지연 훈련이 전혀 안되어 있는 아이. 인내심이 없는 아이다.

 

전통적인 기존의 마시멜론 테스트의 결과에 따르면, 

이런 아이들은 성공을 못해야 한다.

 

그런데 진실은, 

현실은, 만족지연능력이 전혀 없는 이 아이는 

부모가 부유한 덕분에,

만족지연능력이 없고, 싸가지 없는 이 아이는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령 만족지연능력이 부족해서 공부를 못하더라도, 

유학을 보내든 어떻게든 좋은 대학을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

꽤 그럴사한 학벌을 만들 것이다.

 

왜요?

부모를 잘 만났거든요.

 

대림산업의 부회장은 

재벌 폭행계의 한 획을 그은 것이라고,

이사람이 만족지연 훈련을 전혀 못받은 사람이다.

운전 도중에, 운전 기사를 폭행을 한다.

잘못하면 자기도 같이 죽을 수도 있는데, 분을 못참는다...

그런데 이사람은 괜찮을 학벌을 갖고 있다.

이사람이 공부를 잘해서 이런 학벌을 땄을까요?

노력을 해서 딴 것일까요?

만족 지연 훈련이 잘 되어서요?

이유는? 부모를 잘 만난 것.

 

만족지연훈련이 잘 안되어 있었지만, 

지금 엄청 잘나간다. 대림산업 대표이사이다.

 

이 차남이 인하대학 나올 만큼 공부를 잘 했을까요?

만족지연능력 훈련이 낮아서, 성적도 낮다. 원래는 인하대를 못하는데, 

어쨌거나 결국 인하대 졸업장을 딴다.

아빠가 인하대학 이사장.

만족지연훈련이 잘 안되서, 성적이 별로 안좋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엄청 잘나간다.

왜요? 아빠를 잘만났다.

 

성공을 하고 싶으면, 

노력을 해라 !

인내심을 길러라 !

만족 지연 능력을 길러라 !

그래야 성공한다.

이것이 기존의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론이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틀린 것이다.

 

새로운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인내심을 기르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공은 결국 부모 잘만난 사람들이 더 크게 성공하는 게 현실.

 

이게 우리가 사는 사회의 냉정한 모습니다.

 

갑질하는 아아가,

인내심도 못배우고, 아무리 잘못 배우고 커도 

좋은 배경 덕택에 저 아이는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이 눈에 보이기에 슬프다.

 

이런 얘기들을 통해서 얘기 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 일반 민중들에게, 

노력을 해야되, 만족지연능력을 길러야 돼, 

너희가 못사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고 인내심이 부족해서야 !

라고 말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왜냐면, 사실이 아니니까요 !

 

새 실험결과가 말해주듯, 

우리가 가난한 이유는 

우리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우리 인내심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잘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 사회의 성공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보고 노력을 더 하라고 말하기 전에

이 잘못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사가지 없이 자란 아이들이, 

더이상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

 

조선일보 손녀의 갑질 사건을 보고, 

이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다시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부모의 서열에 따라 인생의 서열이 결정되는, 

이 새로운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과(만족지연 능력은 성공과 무관하고, 부모의 경제력과 관련이 많다)가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을 없애는 것부터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 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돌아온 기념으로 마시멜로 테스트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았다.

-- 김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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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알맞은 자리매김을 한다.(Take one's proper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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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주간방송 종합편 (19.08.05 ~ 19.08.09)

(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일본인의 정서적 특징)

2019. 8. 12

 

2차대전 일본 패망 시점에

정작 미군정이 일본에 들어가보니, 

카미카제 자살 특공대의 이미지에 비해서는

일본 국민들이 생각보다는 고분고분 했다는.

 

일본인들의 이중성.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 라는 명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 !

즉, '그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가 반드시 각자의 알맞은 위치를 지켜야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도를 넘으면 안된다.

천민은 천민의 위치에서 절대로 천민 이상의 것을 바라면 안된다.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위치에서 절대로 사무라이 이상의 것을 꿈구면 안된다.

농민은 농민의 위치에서 절대로 농민 이상의 것을 바라면 안된다.

 

그래서, 일본은 '만세일계', 왕조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황제의 혈통이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왕의 권력이 그렇게 오랫동안 강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무사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적도 있다.

그런데, 무사는 무사로저의 위치를 절대로 넘지 못한다. 그래서 왕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막부라는 이상한 제도를 두고,

쇼군이라는 이상한 직책을 만들어 무사가 나라를 통치하기는 해도, 

무사가 절대로 왕이 되지 않는다.

왜냐? 그것이 각자의 알맞은 위치이기 때문.

 

일본이, 임진왜란때, 조선을 침범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이, 

조선의 의병이다.

일본은 전쟁을해서 지역 통치자를 꿀리면 전쟁이 끝난다.

즉 위에서 굴복하면, 아래 사람들을 자동으로 굴복을 한다.

 

그런데, 조선은 그렇지 않다. 

조선도 그렇고, 한국 현대사도 그렇다.

한국의 민중들은 끝까지 투쟁을 한다.

왕이 굴복하고 도망가는 한이 있더라도.

 

각자의 알맞은 위치를 지키는 방식이라면, 

지역 지도자가 패배하면, 그 백성들도 굴복을 해야 하는데, 

한국 민중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이러한 '각자 위치에 알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국제 관계에서도 적용되어 행동한다.

 

각 나라는 각자 나라의 위치에 알맞는 행동을 해야지, 

하위에 있는 국가가 상위에 있는 국가에게 대들거나 

상위의 국가로 올라가려고 하거나 하는 일을 있을 수 없다고 생각.

 

이러한 일본의 정서가, 

지금, 한국이 자신들을 넘어서려는 시도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무역보복을 생각하게된 정서적 기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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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부기님의 블로그
일본인의 이중성을 잘 설명해주는 책 [국화와 칼]

...(전략)

 

 

물론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쟁 주범으로 당시 응징되야 할 대상이었지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 이처럼 체계적으로 적을 연구했다니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았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페이지 : 13


이 책의 제목인 <국화와 칼>처럼 일본인의 이중성에 대해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서늘한 가을에 피어나는 국화를 청결하고 고귀하다고 좋아하는 일본인들, 그들은 겸손하고 예의바르지만 마음속에는 무서운 ‘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계층제도에 대해 신앙과도 같은 신뢰를 가지고 있어, 이러한 신뢰가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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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1887 ~ 1948)가 지은 일본학 연구 도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1년 전인 1944년에 미국 정부의 위촉으로 저자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인류학 분석을 목적으로 저술하였으며 종전 1년 후인 1946년 미국에서 공식 발간되었다. 주로 일본과 일본인은 물론 일본 문화와 풍습 등을 다루었으며 이를 통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해부적인 내용으로 저술해 나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본과 전쟁 중이던 미국이 그나마 말이나 정서가 통하던 독일, 이탈리아군들과 달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군들의 정신구조를 파악하기 위해[1] 의뢰를 했고 그 이후 집필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직접 방문하지 못했던 것도 전시상태여서 그랬다고 설명되어 있다.

다만 유독 독일이나 이탈리아 군인들과 달리 일본 군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딱히 일본만이 별종이었다기보다는 애초에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미국과 비슷한 문화권이지만 일본은 전혀 다른 문화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었던 것. 물론 나치 독일하의 독일인들이나 일본 제국하의 일본인들이나 둘다 광기에 차 있었긴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극한의 전쟁상황속에서는 평범하고 겁에 질린 인간으로 돌아간 독일 군인들과 달리 끝까지 악에 받쳐 싸우던 일본 군인들이 더 충격적이긴 했을 것이다.

제목의 뜻은 일본인들이 선호한다는 꽃인 국화(菊花)와 칼(일본도?)에서 따왔는데 국화는 일본 천황의 상징으로 천황제에 대하여 다루는 책이라 제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무라이 정신을 부르짖으며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왜장도(倭長刀)를 들게 된 무서운 성품이 있다는 이중성을 비유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를 통해 일본과 일본인의 (일본 바깥 기준으로) 기묘한 문화체계를 저자의 전문적인 분석과 해부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통적인 일본의 관습이나 사회체계부터 시작해 일본인들의 외적인 행동, 기본적인 사고방식, 생활 예절 및 풍습, 메이지 유신, 패전 후의 일본인 등을 다각도에 걸쳐 세세하게 나누고 심층적으로 연구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일본을 직접 방문했다는 기록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신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이나 일본에 대해 정보통을 갖고 있다는 미국인들의 증언과 일화, 문헌조사 등을 토대로 책을 저술했으며,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일본의 내막을 알기보다는 일본에 가지 않고 간접적으로 목격하는 것이 더 엄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시켜 주고 있다. 시대적 한계와 간접 체험으로만 이루어진 조사 방법으로 인해 현대에는 여러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본 문화에 대한 훌륭한 연구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인들에게도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이다.

물론 다음과 같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2] 우선 역사적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데, 에도 시대나 메이지 시대에 통용되었지만 쇼와 시대에는 일본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가치관이나 규범이 많지만, 국화와 칼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데, 예를 들어 기리스테고멘(切り捨て御免)이 메이지 시대 이후 사라졌다는 언급이 없다. 그리고 직업, 신분, 세대에 상관없이 일본인들을 모두 동질적인 존재로 엮어 일반화하고, 밥 먹고 잠자는 습관 개인의 다양한 습관일 수도 있는 것들을 함부로 일반화하여 결국 서양인과 다른 '이상한' 일본인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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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책장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로혜

2016. 4. 4. 19:00

국화와 칼

저자 루스 베네딕트

출판 혜원출판사

발매 2006.08.25.

 

지난 학기에 인상 깊게 들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문화의 차이에서 온 생각은 얼마나 다른 가치관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는 강의였다.
우리입장에서 이해가지 않는 일본의 행동은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오래도록 대학생이라면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빠지지 않았던 거겠지?

이 책은 미국인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을 ( 미국은 자국의 군인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철수하지만, 일본은 목숨을 걸고라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거나 자결을 한다.) 이해하기 위해서 문화인류학자에게 일본인에 대해서 연구를 요청하여 쓰이게 되었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의 계층적 구조로부터 발전된 그들의 사상,
그리고 그들의 행위를 파악해서 상대를 파악하려는 미국의 노력,
가히 놀라웠다.

국화와 칼
일본인의 온화한 품성과
그 평온함 뒤로 숨은 날카로움.
그 양면성을 파헤친다.


시대가 많이 흐르긴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캐나다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들의 행동들을 더욱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도 분명히 존재했으라.

'과학'이 닿을 수 없는 공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한다 할지라도 그것도 인간의 지능으로부터 출발할테니까.
빅테이터를 기반으로 평균에 관한 예측은 할 수 있어도,
개개인의 복잡함까지 움켜쥘 수는 없다.
인류를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배우고 간다.
상대를 알려면 열린 마음으로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함도!

​<책에서…> ​

국화와 함께 칼도 한폭의 그림 속에 나란히 표현된다. 일본인은 누구보다도 싸움을 좋아하는가 하면 동시에 유순하며, 군국주의인 동시에 탐미적이다.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또한 적응력이 뛰어나고, 소극적이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한다. 또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또한 새로운 것은 재빨리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예상외로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르는 경우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병사들은 철저히 훈련되었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11p


우리는 미국인으로서 행동할 때의 전제를 잠시 미루고, 어떤 주어진 상황 아래서 일본인이 취하는 행동은 우리가 취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단정하는 안이한 결론으로 비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15p


대부분의 동양인과는 달리 일본인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려는 강한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물론 세계 확장 계획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일도 일일이 기록한다. 일본인들은 놀랄 만큼 솔직하다. 어느 민족이든 다 그렇듯이 일본인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생활 전체를 쓰지는 않는다. 때로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자신이 호흡하는 공기처럼 흔하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미국인이 미국에 관해 쓸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 17p


인간 사회는 스스로를 위해 어떠한 생활 설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일정한 방식과 그러한 상황을 평가하는 일정한 방식을 승인한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이러한 해결방법을 전 세계의 기초로써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하나의 전체적 체계로 받아들인다.
생활의 기준이 되는 일정한 가치체계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생활 속의 다른 부분에서 격리된 부분을 설정하여 두고는 그 속에서 위의 체계와는 다른 일련의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머지않아 무능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순응을 실현하려 한다. 또한 자기의 행동에서 무엇인가 공통된 근거와 동기를 마련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적인 체계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22p


교회는 민중으로부터 점점 더 경제적, 정치적 권력이 시인되어 가는 사실과 대립되는 영역에서는 권위를 잃는다. 어구는 남아 있어도 그 의미는 달라진 것이다. 종교적 교리와 경제적 관습과 줭치는 명료하게 격리된 작은 연못 속에 갖혀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상상의 경계를 넘어서 넘쳐 흘러간다. 그래서 그 물은 분간할 수 없게 뒤섞인다. 이 사실은 진리이므로 연구자는 그 연구가 경제, 성생활, 종교 또는 육아 등 여러 가지 사실 속에 분산된 것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한층 더 그가 연구하는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추적할 수가 있는 것이다. 23p


문화의 비교 연구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생활양식을 세계에서 유일한 해결법으로 믿고 그것의 방어에만 급급해하는 한 절대 발전할 수가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생활양식을 접함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보다 폭넓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즐겁고도 풍요롭게 해 주는 경험을 스스로 단절시키고 있다. 그들은 너무 수세적이어서 다른 국민에게 그들 자신의 특수한 양식을 요구하는 것 이외는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않는다. 28p


어떤 국민의 정부에 관해 품고 있는 가정은 정당의 세력을 표시하는 숫자보다도 훨씬 일반적이며 또한 포괄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이나 민주당도 정부의 존쟂를 불가피한 ㅍ필요악이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전시 상황에서는 다르겠지만, 정부의 관직에 위촉되는 것도 민간기업에서 그에 상당하는 직위에 취임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지위봅다 결코 낫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29p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다르게 규정했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세계에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므로 일본은 계층적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저마다 알맞은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32p


미국이 시종일관 물량의 증대에 전력을 기울였다면 일본은 비물질적 수단을 이용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일본도 미국처럼 생산 증강 운동을 전개해야 했지만 그것은 일본의 독특한 전제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정신은 전부이며 영구 불멸한 것이다. 물질적인 사물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일 뿐 영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물적 자원에는 한도가 있다. 물질적인 사물이 영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료한 일이다'고 종종 방송했다. 35p


일본인이게 있어 명예란, 즉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절망적 상황에 몰렸을 때에는 일본군은 최후의 수류탄 하나로 자살을 하든가, 무기 없이 적진에 돌격을 감행하여 집단적 자살을 하든가, 무기 없이 적진에 돌격을 감행하여 집단적 자살을 당한다. 항복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만일 부상을 당했든가 기절하여 포로가 된 경우조차도 '일본에 돌아가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여긴다. 명예를 잃었을 뿐 아니라 그런 경우엔 '죽은 자'로 치부된다. 53p


일본인은 어떤 하나의 행동방침에 모든 것을 걸며, 만일 그것이 실패할 경우 다른 방침을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57p


일본인을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
각자 알맞은 자리매김을 한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일본인의 견해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질서와 계층제도에 대한 그들의 신뢰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과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우리들로서는 계층제도에 대한 신뢰야말로 인간의 상호관계, 그리고 인간과 국가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가족, 국가, 종교 생활 및 경제생활 등과 같은 그들의 국민적 제도를 열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들은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 58p


일본인은 다른 어떤 주권국보다도 그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지도처럼 정밀하게 미리 규정되어 있다. 그것은 각자의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 그러한 세계 속에서 생활하도록 교육되었기 때문이다. 88p


일본인은 이러한 제도 아래 있으면서 무력적인 계층제도의 지배하에 놓였던 다른 몇몇 나라의 국민들처럼 온화고 순종하는 국민이 되지는 않았다. 각 계급에 어떤 종류의 보장이 주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천민계급일지라도 그 특수한 직업을 독점하는 권리를 보장 받았고, 또 그 자치단체는 당국자의 승인을 받고 이었던 것 것이다. 각 계급에 가해지는 제한은 컸지만, 그 대신 질서와 보장이 따랐던 것이다. 89p


국가는 '각하'들이 각자 '알맞은 위치'에서 직분을 다하면 반드시 그의 특권이 존중될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해당된 정책이 시인되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특권의 경계선을 넘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국정의 최상층에서는 '국민의 여론'은 고려되지 않는다. 정부는 단지 '국민의 지지'만을 요구할 뿐이다. 국가가 그 권한의 영역을 지방행정의 범위 내에 투입할 때에도 또한 그 지배권은 황송하게 받아들인다. 갖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는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 같은 불가피한 필요악이 아니다. 일본인에게 국가는 최고의 선인 것이다. 105p


일본인은 그들 스스로가 요구한 것을 다른 나라에 강요할 수는 없었다. 환영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큰 오산이었다. 그들은 '각자 알맞은 자리매김을 하는' 그들의 도덕체계가 다른 어느 나라에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닺. 다른 나라에는 그러한 도덕이 발을 뻗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일본의 유일한 산물이다.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도덕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117p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들은 늘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말을 한다. 125p


사소한 일에 관한 이와 같은 신경과민이나 상처받기 쉬운 이런 생각은 미국엑서는 비행 천년의 기록이나 신경병 환자의 병력 기록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것이 미덕이다. 일본인들은 이와 같이 극단적인 짓을 하는 자는 많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성격이다. 131p


기무, 즉 의무는 태어남과 동시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고 느껴지는데 비하여 세상에 대한 기리는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고 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62p


우리들은 경쟁을 '좋은 일'로 생각하고 자극시켜 기꺼이 도전한다. 심리적 테스트 결과를 보더라도 경쟁은 사람들을 자극시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자극이 강할수록 작업 능률은 향상된다. 우리들의 경우 어떤 일을 혼자서 할 경우 경쟁자가 있는 경우에 달성하는 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테스트 결과는 그 반대의 사실을 낳고 있다. 이러한 일은 특히 소년기가 끝난 뒤의 시기에 현저하다. 일본의 어린이는 경쟁을 장난처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청년이나 성인의 경우에는 경쟁자가 있으면 작업 능률이 뚝 떨어진다. 혼자서 할 때에는 비교적 좋은 진척을 보이고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적다. 183p


일본인은 그와 반대로 예의의 모범 답안이다. 이러한 예의바름은 그들이 오명을 씻어야만 하는 기회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그들응 모욕이 불러일으키는 분노를 성공의 더없는 자극제로 삼고 있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태를 극히 제한하고 있다. 188p


일본인 심성의 특성은 대부분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점과 그것과 표리일체인 불결한 더러움을 기피하는 태도에 기인한다.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실제로 우리들은 집안의 명예이든 국가적 긍지이든 간에 모욕을 빧으면 변명으로 완벽하게 씻어 내지 못하면 본래대로 깨끗해지거나 완전히 지유할 수 없는 오점이나 상처로 여기도록 길들여져 왔다.
일본인의 실생활 중에서 빈번하게 만나는 여러 경우의 복수들은 깨끗함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결벽증이 되어 버린 국민이 행하는 아침 목욕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2p



일본인은 작은 실패나 비방, 배척에도 상처를 받는다. 따라서 사소한 일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마음을 상하는 쪽을 택한다. 195p


일본인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치열한 노력과 단순한 답보 상태인 무기력 사이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일본인의 본성이다. 일본인은 지금에 와서는 패전국으로서의 명예를 오호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연랍국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p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최상의 목표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쓰이는 수단은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도구들일 뿐이다. 사태가 변하면 일본인의 태도는 돌변하여 새로운 진로를 향하여 걸어가게 된다. 일본은 이러한 대도 변경을 서구인처럼 도덕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주의'에 열중하고, 이데올로기의 사항에 관한 신념에 열중한다. 203p


과거의 모든 서구인이 묘사한 일본인 성격의 모순은 자녀 교육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은 일본인 인생관에 그 어떤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원성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하던 경험에 의하여 그 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 다시금 '부끄러움을 몰랐던' 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의 천국은 과거에 있다. 그들이 인간은 본디 선하고, 신은 자애로우며, 일본인으로 태어난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유년시대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335p


그러나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많은 요구를 한다. 세상 사람으로부터 배척당하여 비방을 받는 큰 휘협을 피하기 위하여 그들은 모처럼 맛본 개인적인 즐거움을 버린다. 그들은 인생의 중대사에있어서는 그런한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 이와 같은 패턴을 윕반하는 소수의 인간들은 스스로에 대한 존경을 상실한다는 위험에 빠진다. 343p


오늘날 일본은 서구적 의미의 '칼을 버리고 항복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런데 일본적인 의미에서는 일본인은 여전히 자칫하면 녹이 슬기 쉬운 마음속의 칼을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또덕적인 어법에 의하면 칼은 보다 자유롭고 보다 평화로운 세계에 있어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인 것이다. 3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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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연&과학
,

조국장관 사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해 주는 

"양질전환의 법칙"에 대한 

이완배 기자의 이야기는 

위로도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도 준다.

 

좋은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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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사회의 변화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2019. 10. 16

 

조국사임 관련 얘기...

 

사회변화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나 살펴보자.

 

한국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의 변화

1980년1월4일을 100으로 잡고, 상대적인 주가 추이로 보면 된다.

 

지금은 코스피 지수가 2000이 넘는 것이 어색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코스피지수의 마지노선이 1000~1100 사이였다.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는 그동안 거의 400에서 1000사이였다.

이 사이를 수십년째 왔다 갔다 했다.

 

코스피 지수의 장기 변화 그래프를 보면, 

100부터 시작을 해서 조금씩 증가를 하다가

1980년대 후반에 1000을 처음 도달했다가 

확 꼬꾸라져서 500근처까지 폭락을 한다.

이게 1000선을 깨보려는 1차 시도였는데 실패로 돌아간다.

 

1000선을 넘으려는 2차 시도가 1995년에 있었지만,

1995년 살짝 코스피지수 1000선에 다시 도달하더니, 

IMF 폭격을 맞고 270까지 다시 폭락했었다.

 

1999년말 ~ 2000년초(it열풍 있는 시기에) 주가지수 1000을 넘으려는 3차 시도가 있었다.

다시  1000넘는가 하다고 다시 또 꼬구라졌었다.

 

2002년에 4차 시도, 

이때도 943까지 올랐는데, 또실패. 56 0선으로 다시 추락.

 

2004년에 다시 5차 시도, 

950까지 올랐다가, 다시 500선으로 추락

 

이때까지만 해도 1000~1100사이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관념들이 있었다.

증권가에서 전문가들도, 

우리나라는 떄려죽여도  500~1000선 박스권에서 맴돌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500선에서 주식 샀다가 1000선에서 팔는 전략이 일반화 되었었다.

 

왜 이런 생각이 강화되는가 하면

사람들이 주식을 많이 사면 오르고, 팔면 떨어지게 되는데, 

주가가 1000 근처에서 꼬꾸라지는 양상이 계속 반복되니까

사람들 마음에서 1000근처 오면 팔자는 심리가 작동.

그래서, 경제가 아무리 좋아져도, 주가지수가 1000근처에만 오면 팔자는 심리 작동.

 

그런데, 2005년에 마침내 한국 증권 역사에, 대역사가 이루어진다.

2005년에 주가가 1000선으로 치솟는데, 

그때 증권가 분위기는 "이번에도 1000선을 못 넘을 것" 이었다고.

증권전무가 1000명중 999명은 "1000전에 꼬꾸라져"라고 예상.

그런데, 2005년 연말에 1300을 뚫어버렸다.

드디어 1000의 벽이 무너진 것이다.

25년만에 기록이다. 

 

심지어 이것이 거품이 아니었던게, 

다음해 2006년에도 1년 내내 1400선을 유지했고,

2007년에 다시 폭팔적인 상승세를 타서 7월 2000선을 돌파했다.

 

그동안 25년동안 500~1000사이를 맴돌던 주가가 역사적인 점프를 해서 

2000선에 안착을 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재벌들은 참여정보에 고마워해야 한다.

재벌들은, 이때 재산을 주식으로 5배 이상 불렸다.

 

우리나라 보수정권 어떤 누구도 하지 못했었던 증시 점프를 

참여정부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 2003년 2월 25일–2008년 2월 24일 )

자본시장 활성화가 이루어진 것도, 참여정부 시대에 완성된 것이다.

재벌들은, 이때 재산을 주식으로 5배 이상 불렸다.

 

압도적으로 민주정부 떄 주가가 크게 올랐다.

 

김영삼정부때 IMF터져서 230까지 떨어졌은데, 

김대중 정부에서 1000이상으로 올려놓고,

노무현 정부에는 역사적인 점프를 통해 2000선까지 올렸음.

 

우리나라 역대 최대 코스피 지수가 2,607인데, 

이것도 작년 1월 문재인 정부 때 역대 최고 기록이 달성된 것이다.

 

그런데, 왜 뜸금없이 주식시장 얘기를 했냐면, 

2005년 당시 자신이 증권기자였는데,

자신도 그때 주식이 1000을 절대 못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는데, 

한 번 훅하고 넘어가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폭락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종합주가지수 2000선은 당연시 되었다.

 

그래서, 그때 주가지수가 1000이 마지노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얘기하면, 

요즘 사람들은 잘 믿지를 않는다.

그런데 진짜 그때는 1000이 마지노선이었고, 그런 상태가 25년동안 계속 되었었다.

 

여담이 길었는데,

그럼, 오늘 주제로 돌아와서..

 

마르크스가 정립한 정치 경제학에서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 법칙은 정치/경제학의 법칙이라기 보다는 

자연법칙에 가까운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변증법이라는 체계를 확립하면서

철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고, 

 

마르크스는 이 자연 법칙이자 철학법칙을 

경제학으로 끌어들인 공로가 있는 것이다.

 

'양질 전환의 법칙' 은

사물의 양과 질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물이 한컵에서 두컵으로 증가되는 것은 양의 변화이지만,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것은 질이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사회 변혁이라는 것은 

양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질이 변하는 것이다.

 

예를들어서, 

노예제 사회가 봉건제 사회로 변하고, 

봉건제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고, 

이런식의 역사 발전은, 

노예숫자가 늘고 줄어들거나 봉건 지수 숫자가 늘고 주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지배구조가 질적인 거대한 변화를 이룬 것이다.

 

질의 변화가 사회의 본질적인 변화라는 건데, 

본질의 변화는 혁명적 변화일텐데, 

이게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면, 

헤겔은 "양적인 변화가 계속 누적되면, 질적으로 변한다" 라고 설명.

 

쉽게 설명하면, 

어렸을 때, 운동회 할 때, 박깨기를 했는데

오자미를 수없이 던지다 보면, 어느순간 박이 터진다.

이렇게 박이 터지는 게 질의 변화이다. 혁명적 변화이다.

 

이 혁명적 변화는 오자미를 계속해서 박으로 던져야 박이 터지는 것이다.

오자미가 박을 때리는 양이 수십번 수백번 누적이 되면

갑자기 한 순간에 펑하고 터진다.

 

이떄 주의할 점이 있다.

질이 변하는 혁명적 변화는 매우 극적이다. 펑하고 터진다.

그런데, 그 극적인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양질 전환 법칙의 특징이다.

 

오자미로 아무리 박으로 던져도, 터지기 직전까지는 박은 멀쩡해 보인다.

"저게 언제 터지냐, 저거 잘못만든 거 아니야"

이런 의심이 들 때 쯤, 수많은 오자미의 구타가 누적이 되서, 

갑자기 펑하고 터지는 것이다.

 

물이 수증로로 바뀌는 질적 변화도 마찬가지다.

 

99도까지는 외견의 변화가 없다가

가열이 계속 누적되다 보면,

100도가 되는 순간 액체가 삽시간에 거짓말 처럼 기체로 바뀌게 된다.

 

헤겔도 그렇고, 마르크스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사회 변혁은 직선으로 점차 바뀌지 않는다. 

헤겔과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바뀐다.

한동한 평평하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가, 변화는 한순간에 훅하고 발생.

 

처음에 주가 얘기를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25년동안, 1000의 고지를 넘으려고 5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었다.

그래서 1000선을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절망할 무렵에,

누구도 예상 못했던 방식으로, 주가가 훅하고 2000선을 돌파했다.

 

핵심은, 이전에 1000선을 깨기 위한 5번의 실패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헤겔은 

"양이 차지 않으면 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로 이 법칙을 설명.

 

오자미로 수백번 박을 떄리는 실패가 있지 않으면,

펑하고 박이 터지는 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데, 

실패의 양이 어마무시하게 많아야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천재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엄청난 능력자가 천재적인 일을 착착착 해낸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0세기 최고의 화가가 피카소인데, 

그림 한 점에 수백억원, '알제의 연인들'은 2000억원에 팔렸다.

 

그러면, 피카소가 그리면 다 수백억원짜리 그림이 되는 걸까?

 

천만에요.

피카소가 평생 그린 그림이 유화만 15,000점이다.

데생만 34,000점. 판화가 10만점.

다 함치면 얼추 15만점의 그림을 그린것.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1년이 365일인데, 100년이 36,500일이다.

15만점을 그리려면, 하루에 5점을 100년동안 그려야 하는 양이다.

판화 10만점은 여러장 찍는 거니까 이것을 뺸다고 해도, 

유화, 데생, 조소만 6만점인데, 

이것도 하루에 2점씩 100년을 그려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피카소가 어마무시하게 그려댄 것이다.

 

그럼, 피카소는 왜 이렇게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림이 잘 안되는까 그렇게 그림을 그렸겠지요.

그리면서 얼마나 절망을 했겠는가? 왜 그림이 이렇게 잘 안되는지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러한 엄청난 양이 누적되다보면, 

언젠가 질적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오늘날 피카소이다.

 

엇그제(10/14) 조국장관이 사임을 했는데, 

조중동, 자한당은 신났다.

많은 민주 시민들은 멘붕에 빠졌다.

 

저는 이문제의 본질은 

누구를 지키고 안지키고의 문제가 아니고, 

검찰개혁을 어떻게 이루어 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싸움은 원론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지적으로 보면, 

이번 싸움은 이기지 못한 것 같다.

왜냐면 상대의 목표가 오로지 '조국낙마'에 화력을 총 동원했기 떄문이다.

그러면, 사실,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 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되지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고,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락보고 있다면, 

누군가 비를 맞을 때, 함꼐 비를 맞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그동안 조국 장관의 호불호를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한번도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청문회에서 "나는 사회주의이면서 자유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말한 조국 장관에 대한 연민, 동지애가 상당히 컸었다.

그래서, 사퇴하는날 상당히 슬펐다.

 

"그런데, 슬픔과 아쉬움은 딱 이틀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슬퍼할 시기이고 그럴 권리가 우리들에게 있다.

 

그런데, 툴툴 털어 내야 한다고 생각...

검찰개혁뿐 아니라 이사회에서 바꿔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주변에서 현실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할 때, 

제가

"세상은 바뀌고 우리는 할 수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다고는 했지

쉽다고는 안했다" 라고 말하고 한다.

 

누적된 투쟁의 양기 언젠가는 반드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계속된 실패는, 양의 누적을 포기하게 만들기 쉽다. 힘드니까요.

그만큼 질의 변화가 늦어진다.

 

이틀 정도 소주 한 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약간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삼일째부터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포기하지 않고 자꾸 두드리면, 

언젠가는 훅하고 사회가 변화한다.

 

양이 누적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처럼 훅하고 사회가 바뀌는 시점이 온다.

 

많은 분들이 우울하셨을 텐데

조금만 더 심란하기로 하고, 

금방 다시 훌훌 털어내서 우리 민주 시민들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 온것처럼

오늘부터는 또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함께 고민하고 싸워 나갔으면 좋겠다.

 

더 두드려야 더 빨리 변할 테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오늘, 양질전화의 법칙을 통해서 

사회변화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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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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