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행위자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가 밀정이다.
일정은 가장 비밀스러운 내부 독립운동 조직의 정보를
왜놈들에게 넘겨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고문 등으로 죽게 만든 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밀정들이 제대로 처단되지 못했다.
처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밀정들은 독립유공자로 표창하고 모시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밀정의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일본 극우들이 보기에는
한국이 우수워보일 것이다.
자신들에게 협조해서,
독립투사들을 밀고했던 자신들의 첩자들이
독립투사로 모셔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본 극우들은,
한국민들이 우수워 보이는 것이다.
2019년 8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KBS 1TV ‘시사기획 창’은 ‘밀정 2부작’을 방영했다
여기서 현재까지 찾아서 확인된
반민족행위자였던 밀정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물론 아직 조사가 덜 끝나서 밀정으로 공표하지 못하고 있는 밀정도 있을 것이고,
현재까지는 전혀 들어나지 않고 있는 밀정들도 있을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추가적으로 밀정들을 찾아내어,
그 실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미 밝혀진 밀정들에 대해서,
가장 악날한 반민족행위자로서의 자신들이 행위에 대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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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로 둔갑” … ‘일제 스파이’ 활동한 밀정 895명 명단
일제에 독립운동가 관련 정보를 몰래 넘겨주는 활동을 했던 ‘밀정’들의 실명 명단이 공개됐다.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3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밀정 2부작’을 방영했다.
방송은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밀정 혐의를 한 인사들을 재조명했다.
[시사기획 창] 밀정 1부 - 배신의 기록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집 / KBS뉴스(News)
https://www.youtube.com/watch?v=lbGVmD4DNlE
게시일: 2019.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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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탐사보도부, 일제강점기 '밀정' 추적
▶ 일본·중국 기밀문서 5만 장 분석
▶ 밀정 혐의자 895명 실명 공개...독립유공자도 포함
▶ "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의 비서는 밀정이었다"
▶ '안중근 거사 동지' 우덕순의 이상 행적 포착
올해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KBS 탐사보도부가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밀정을 추적했다. 지난 8개월 동안의 추적이었다.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5만 장의 문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KBS 탐사보도부는 △895명 이름 전체와 △이들 가운데 독립유공자가 된 이는 누군지 △또 이들의 밀고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8월 13일과 20일 방송되는 '밀정 2부작'(밤 10시, KBS1TV)에서 나눠 공개한다.
<2019-08-13> KB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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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3cWdy_CtgDc
게시일: 201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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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밀고했던 밀정 895명 명단
독립투사 밀고했던 밀정 895명 명단
우덕순이 받았던 밀정의 월급
우덕순은 현재도 현충원에 안장되있음
이정이 일제에 밀고한 독립군 간부들의 상세 모습들..과 여러 정황들
(두사진 동일인물이며 유일하게 사진이 또렷이 있는 밀정 이연하 라고 합니다..독립군의 여라가지를 중국일대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했다고 하네요..)
보훈처에 등록되있는 이정의 행적
시신없이 위패만 현충원에 있고 옆에 이홍래 선열은...이정이 일제에 밀고해서 순국..
https://www.youtube.com/watch?v=lbGVmD4DNlE
KBS 시사기획 창 탐사도보 팀이 일본 중국측 자료싹다 찾아가서 뒤져보고 자문까지 구해 8개월여동안 찾은거라함
다음주 까지 방송하는 2부작이고.. 요즘에는 다큐프로그램들 거의다 유튜브에 풀버전 올려놓으니 영상을 직접보셔야 제대로 알수있음
우덕순은 안중근의사의 동지이자 이토히로부미 저격에도 같이 동참했던 인물..공판에서 3년? 형을 선고받도 나중에 나왔지만 그 10년동안 사람이 완전 변해버려서 조선인민회라는 것을 만들어 밀정노릇 제대로하고다님
현재도 현충원에 안장되있음..다만 후손들이 없음 ..
이정은 김좌진장군 의 최측근으로서 수백장의 보고서를 작성해 일제에 독립군동향을 밀고해 협력함.동지들도 팔아넘김
봉오동전투 영화를 보신분이라면 모르겠지만 거기도 최진동이라는 사람이 나오나요?...그사람도 친일파로 변모하는 사람임
방송에 의하면 일본 조선 중국 일대에 퍼트린 밀정만 헤아릴수없이 많다함
일본 외무성 , 조선 총독부, 조선군 사령부(일제 헌병대) 에서 심어놓은 첩자들..또는 회유
심어놓은 밀정이 누군지도 모를정도로 많다고 함....
.
일본에서 아직 공개안한 자료들 더 나오면 더 많이 나올거라함..
어쨋든 최소한 현충원에 묻혀있는 배신자들은 좀 빼냅시다 보훈처 일 똑바로하세요..
이번에 보훈처장도 바뀐다면서요?...
아니 어떻게 자기 밀고했던 인물과 바로 옆에 위패를 모셔놓습니까? 에휴
대놓고 친일파도 나쁘지만
이렇게 숨어있으면서 밀정노릇 했던놈들은 ㅡㅡ
친일파 명단에서도 밀정명단은 부록으로 따로 만들어야할듯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된 연구사료가 거의없다고 합니다
사진도 찾기 힘들구요
그나마 보고문서와 기록들이라도 있는게 다행이지
KBS 가 이명단 까발렸으니 이제 그 후손들이 어떻게 대처할지 잘모르겠네요
이정의 후손들은 전화 안받는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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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정' 방송 추가 캡쳐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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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곳곳에 심어 놓은 일제의 밀정 공작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서훈까지 받은 밀정들의 암약.. 버젓이 현충원에 안치 서훈 취소해야
정현숙
기사입력 2019/08/21 [09:05]
일제의 집요하고 끊임없는 밀정 포섭.. '임시정부 와해 전략'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가 보기에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암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대한 독립운동의 거목들의 주변에는 늘 밀정의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상해 임시정부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통치를 하는데 눈엣가시였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일제는 임시정부를 파괴하기 위해 곳곳에 밀정을 심어 놓고 갖은 술수를 써 공작을 펼쳤다. 백범 김구 선생이 경무국장을 맡았던 임시정부 조직 안에도 밀정이 있었고, 약산 김원봉 선생의 바로 옆에도 밀정이 붙어 있었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로 선봉에 섰던 약산 김원봉 선생은 월북 이후 행적 논란으로 서훈을 받지 못했는데 그의 밑에서 의열단이 일으킬 회의 정보와 거사 정보를 일본에 낱낱이 밀고했던 악랄한 밀정 김호는 건국훈장까지 받고 독립유공자가 된 참담한 현실을 보여줬다.
20일 밤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 ‘밀정 2부 – 임시정부를 파괴하라’에서는 지난주 1부에 이어 제목 그대로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일제가 밀정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을 와해 시키기 위한 치밀한 공작을 다뤘다.
1919년, 독립을 향한 조선인의 뜨거운 열망은 상해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깜짝 놀란 일제는 더 많은 밀정을 투입해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한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회유하는 전략을 세운다.
그 전략의 선봉에 있던 사람은 1918년부터 2년간 조선군 총사령관을 지낸 '우쓰노미야 다로', 사이토 총독에 이은 2인자로 3.1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군 최고 지휘관이다.
우쓰노미야는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포섭하는 전략을 택했다. 대표적 사례가 범재 김규흥이다. 김규흥은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어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직후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는 김규흥을 다섯 차례 만나 만찬을 함께하며 포섭에 들어간다. 밀정비를 지급하며 마음을 사려 했고, "임시정부를 파괴"하고 "독립운동가를 회유"하라는 임무를 김규흥에게 내린다.
그의 공작 과정은 그가 남긴 일기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는 '배일거두(排日巨頭)', 즉 유명 독립운동가를 집으로 불러들여 수차례 밀정으로 회유한다. 노모에게 선물을 사주라며 100엔을 주기도 했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도 수백만 원 이상의 거금이다.
김규흥과 우쓰노미야의 이 같은 부적절한 만남은, 우쓰노미야가 남긴 일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동안 학계에서도 이를 근거로 김규흥의 친일 논란이 있었다. KBS 탐사보도부는 김규흥이 1919년 말 상해로 돌아간 뒤, 우쓰노미야 사령관에게 실제 두 차례 편지를 보내 상해임시정부 상황을 세세히 보고한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그의 친필 편지로, 한국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김규흥은 편지에서 조선과 일본이 하나임을 뜻하는 '일선융화'를 역설했다. 또 상해임시정부의 동향을 보고하고, 거액의 돈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쓰노미야 사령관 각하에게."
"상해임시정부는 200명이었으나 대부분 귀국하고, 현재 남은 사람은 60명입니다. 이중 극렬분자는 40명에 이릅니다.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선 20~30만 엔이 필요합니다."
"김달하와 함께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을 북경에 모아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계책을 갖고 있습니다. 활동비로 김달하에게는 3만 엔, 저에게도 2만 엔을 주시길 바랍니다."
훗날 밀정으로 밝혀져 처단된 '김달하'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밀정 김달하와의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활동이 소문났는지, 자신이 의심받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함께 전한다.
"상해에 있는 단원들로 인해 때때로 강박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밀활동이 드러나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잠시 다른 곳으로 피신합니다."
김규흥은 편지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세력이 점차 위축되고 있다는 점과 이른바 '극렬분자'가 40명 정도로 분류된다는 점, △(훗날 밀정으로 드러나 독립운동 진영에게 처단된) 대표적 밀정 김달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회유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전하고 있다.
상해 일본 총영사관은 끊임없이 밀정을 생산해 내는 이른바 '밀정 공장'이었다. 집요하게 임정 내부에 밀정을 침투시켰고 김구 선생의 경호원까지 밀정으로 포섭했다. 세 차례에 걸쳤던 김구 선생 암살 시도. 모든 공작에 일제는 밀정을 동원했다.
의열단을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선 약산 김원봉 선생, 1926년 작성된 일본 기밀문서를 보면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함께 한구로 왔고, 김원봉은 북경을 거쳐 광둥으로 향했다."면서 "상해 프랑스 조계 31공학에서 의열단 총회가 개최될 것이다. 참석자는 40~50명이다"라고 적어 사무실 위치는 물론 행적 하나하나 철저히 비밀이었던 의열단의 내부 정보가 밀정에 의해 누출됐다.
문서에 적힌 밀고자는 의열단원 김호, 본명 김재영으로 의열단과 청년동맹회에 참여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원봉 선생의 후손은 의열단 동지가 밀정이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김태영/김원봉 선생 후손은 "굉장히 놀랐어요. 밀정이라는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그런 짓인데 기막힌 일이죠, 말이 안 되는 얘기죠."라고 말했다.
요즘 영화 '봉오동 전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백두산 호랑이'로 불렸던 명장 홍범도장군도 당시 '봉오동 전투'를 앞두고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어김없이 일제가 심어 놓은 밀정의 마수가 뻗쳐 있었다. '봉오동 전투'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와 함께 항일 무장 투쟁의 빛나는 금자탑이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가 있기 10년 전부터 지속적인 일제의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1912년 작성된 일본 기밀문서, 밀정이 된 홍 장군의 부하가 밀고한 내용이다.
"홍범도는 러시아 말을 타고 있다. 완장에는 붉은색 선 두 줄이 둘러져 있고, 견장은 청색이며 '통령감'이라고 적었으며 "홍범도가 사는 곳은 혜산진 대안 일리에서 약 30리 떨어진 신약수동이다."
한국에 은밀히 파견된 홍범도 부하들의 구체적인 신상정보까지 낱낱이 담겨있어 충격을 주고 있으며 밀정은 독립운동을 와해시키려는 일제의 핵심 전략이었다.
100년 전 당시에는 이 같은 신상정보들이 독립운동가 검거에 긴요한 자료가 됐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일제는 또 홍범도의 부하(원상학, 표창순, 김한보 등)들이 일제강점기 한반도 상황을 은밀히 알아보기 위해 조선으로 침투했다는 사실과, 이들의 신체적 특징까지 파악했다. 일제의 집요한 정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KBS 탐사보도부가 일본과 중국의 기밀문서 5만장을 장기간 분석한 결과 찾아낸 밀정 혐의자만 895명으로 이들의 이름을 지난 방송에서 공개했다. 앞서 상해 임시정부의 정황을 낱낱이 일본군 사령관에게 밀고한 김규흥과 도산 안중근 의사의 동지 우덕순, 김좌진 장군의 비서 이정, 의열단장 김원봉의 부하로 있으면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김호 등이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돼 현충원에 버젓이 안치되어 충격을 준다.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밀정.. 서훈 취소는?
김규흥과 우덕순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독립운동가였다가 일제에 밀정으로 포섭되어 해방 이후에는 밀정의 기록은 다 지워지고 다시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아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형편이다.
특히 과거에, 그러니까 1960년대의 경우에는 서훈 심사가 더 부실했었고, 친일 청산도 제대로 되기도 전에 한국전쟁을 맞았기 때문에, 이런 사례들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또 2000년대 이후 일본 자료가 더 많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 알려지게 된 측면도 있다.
이들 밀정 가운데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광복 이후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도 적잖이 알려져 있다. 밀정의 경우 첩보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해방 이후 신분세탁을 통해 군과 경찰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편이다. 그러나 밀정의 특성상 가명을 여러개 쓰고 말 그대로 암약했던 존재기 때문에, 누구라고 특정하기가 쉽진 않아 계속 추적 중이다.
일제가 밀정에게 상당한 액수의 비용을 지급했는데 처음부터 밀정으로 고용돼 고정적으로 월급 받고 일한 밀정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사람들로 두 부류로 나뉜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지로 잠복하면서 변절한 후자의 폐해가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 기밀문서를 보면 이들이 얼마나 치밀했는가를 엿볼 수가 있다. 고용한 밀정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그렇게 판단될 때 확실한 어조로 해당 정보를 승인해주고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밀정의 정보로 일제가 작전을 벌여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한 대표적 사례로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비서로 있으면서 밀정으로 암약했던 이정의 밀고 내용을 보면, 독립군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이홍래 선생이 교묘하게 변장해서 어디어디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방식으로 돈을 모으고 있다고 세세하게 밀고하고 있다.
이정의 밀고가 있고 나서 한 달 뒤에 이홍래 선생은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밀고했던 이정과, 밀고 대상자였던 이홍래 선생의 위패가 현충원에 나란히 안치돼 있는 씁쓸한 현실이다. 부실한 서훈 심사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면서 가짜 독립유공자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밀정을 추적하는 것은, 친일청산의 의미로도 읽히면서 서훈 취소로 가야 마땅하다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훈장을 주는 것보다, 줬던 훈장을 취소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학계 전문가들은 이번 밀정 취재를 높이 평가하고, 탐사보도부에서 장기간 추적해 확보한 자료가 워낙 구체적이어서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KBS 보도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아직까지는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까 독립유공자들에 대해서 과연 근거가 있는지 조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당초 1차 발표 시점이 7월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고, 관련 취재를 해보면 난관이 많은 입장이다. 예산, 인력, 전문성, 많은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보훈처의 적극적인 대처가 더욱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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