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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 노래18곡 모음 《선곡 청취가능》
2020. 3. 7
🌝"시간타임"을 누르시면, 그 노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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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0:01~ 한번쯤
02 [ 2:43~ 고래사냥
03 [ 7:17~ 사랑이야
04 [ 11:34~ 우리는
05 [ 15:50~ 푸르른 날
06 [ 18:53~ 맨처음 고백
07 [ 23:08~ 하얀손수건
08 [ 26:05~ 상아의 노래
09 [ 29:47~ 밤눈
10 [ 34:30~ 딩동댕 지난여름
11 [ 38:57~ 선운사
12 [ 43:03~ 담배가게 아가씨
13 [ 47:28~ 참새의 하루
14 [ 51:37~ 나의 기타이야기
15 [ 56:35~ 토함산
16 [ 1:00:37~ 가나다라
17 [ 1:04:36~ 피리부는 사나이
18 [ 1:07:24~ 왜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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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사나이 - 송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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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가나다라
가나다라 - 송창식(1980)
노래 가나다라
아티스트 송창식 (Song Chang Sik)
앨범 골든 제3집 (Golden Bes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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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bs space_621회_송창식 - 담배 가게 아가씨
구독자 131만명
EBS 스페이스 공감,EBS Space,621회,20100514,송창식
송창식
나의 키타 이야기
'EBS 스페이스 공감이 초대해야 할 음악인!'으로 음악 관계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표 던지기에 주저하지 않은 음악인이 있다. 포크 음악의 서정성과 시대정신을 동시에 갖춘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인 '송창식'. '새는', '선운사', '피리 부는 사나이', '담배 가게 아가씨' 등 그의 노래는 동시대인들에게 '내 인생의 첫 노래'에 다름 아니었다.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한국 포크 음악의 계보를 연 '트윈 폴리오'로 활동하며 번안곡을 노래하던 그는 2년 뒤 '창 밖에는 비오고요'를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했다. 그때부터 가수는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70년대 싱어 송라이터의 시대가 열린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 O.S.T를 통해 젊은이의 꿈과 좌절을 노래한 '왜 불러', '고래사냥'은 넘버원 행진을 거듭하며 대중적 인기를 거머쥔다. 무엇보다도 그의 노래들은 한국 가요계를 한 차원 성장시켰는데 그것은 그의 음악의 변화 과정과도 맞물린다. 초기 클래시컬한 선율과 깊이 있는 가사로 한국 가곡의 근본에 도전하는가 하면, 70년대 후반 트로트, 포크, 록, 국악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스타일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송창식 표 발성'으로 독특하지만 매력 넘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우리 음악 체계를 연구하며 곡을 썼다는 그에게는 '언제나 음악의 근원을 면밀히 탐구한 음악가'라는 이름이 주어지기도 했다. 특별히 이번 무대는 음악 관계자들에게 거론된 '시인과 촌장'의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트윈폴리오'의 윤형주가 함께 한다. 세 사람의 각별한 만남을 EBS 스페이스 공감 6주년 기념 공연에서 만나보자.
출 연 : 송창식(보컬/기타), 함춘호(기타) , 윤형주
프로그램 : 나의 키타 이야기, 담배 가게 아가씨, 피리 부는 사나이, 상아의 노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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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음악당 ep.7/송창식]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ㅜ_ㅜ...
2020. 3. 3
구독자 13.1만명
깊이가 다른 송창식의 라이브...!
정말 집중해서 듣게 되는 가사와 멜로디
Nawsae Lee3개월 전(수정됨) 아, 안타깝다, 송창식. 그가 저렇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 . 그가 2,3십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한류'파급력에 힘입어, 한국의 대중음악이 이렇게 수준높은 분야도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며 지금의 아이돌위주의 K-pop보다 10배는 더 많은 국제적 팬층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 전세계의 한류 팬들에는, 음악분야에서, 아이돌 위주의 케이팝을 안좋아하는, 그리고 훨씬 더 '깊은' 맛의 한국문화를 찾는 이들이 무척 많다) 송창식. 진정 '천재중의 천재'. 대한민국 가요 백년사에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 =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재능 --- 한국대중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이 있지만, 그 모든 거장들 중에서도 송창식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단연 그의 독보적 독창적 음악세계때문. 즉, 신중현도 조용필도 모두 정말 뛰어난 거장임은 분명하지만, 그들보다 송창식이 한 수 더 위인 것은, 신/조 모두 서양 장르(소울/블루스/롹 . . .)를 수입하여 --- 그러나 완전히 스스로 소화/체화하는 데에 성공하여 --- 이룩해 낸 것임에 반해, 송창식의 음악은 정말로 한국적 고유정서를 온전히 담아, 마치 전래동요/전래민요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서, 듣고 있노라면 '그래, 이게 바로 한국성(性)이지 !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는 점. 그러한 '한국 고유성' 이외에도, 그의 '모든' 곡들이 갖는 높은 품격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그의 곡들은 모두, 선율은 죄다 '예술작품' 수준이요 가사는 죄다 '문학작품' 수준 = 가사마다 한편의 '시(詩)'다. (***여기서 '문학작품수준'이라고 할 때, 그 '문학작품'이란, 겉보기에 아주 '고매'한 문구들만 나열된 것만이 '문학작품'이 아님을, 문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 그건 마치, 미술에서, 진정 수준높은 미술작품은 --- 그냥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 또는 화려하게만 그리는 것. . . 등이 아니고 --- 인간의 온갖 감정을 얼마나 잘 투영했느냐에 따라 판단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리고 여기 이 곡은, 비록 '한국고유성/토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예외적 작품이나, 그 작품성/완성도가 너무 놀라운 곡. = 이 곡은 완전히 지중해를 떠올리게 하는 유럽 풍의 선율인데, 한국인이 유럽의 곡보다 더 유럽스러운 곡을 만들어냈다는 것부터가 화젯거리였다. (*** 이것이 그렇게 멋진 유럽풍이었음을 반증하는 뒷 얘기 :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중의 하나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이 곡을 듣고 너무 마음에 들어 자기 앨범에 넣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뭏든 송창식은 천재. 하늘이 내려준 음악적 문학적 재능. . . 그의 천재성을 생각할 때, BTS가 몇 십, 몇 백 억 씩 번다는 걸 생각한다면, 너무도 아깝다. ---- Nawsae Lee 내가 송창식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아쉬운 / 슬픈 것은, 앞으로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저런 음악, 저런 가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점. = 그의 너무도 독보적인 선율 + 독보적인 가사 들 + 그리고 마치 편하게 숨을 쉬는 듯 부드러운데 온 공간이 울리는 그 독보적인 발성/창법. . . 이런 걸 다 갖춘 가수가 이제 더이상 없다는 점. 아니, 사실은, 전세계적으로도, 위 세가지 요소를 다 갖춘 '싱어송롸이터'로서의 가수 --- 그것도 기타 하나만 가지고 저렇게 해낼 수 있는 --- 가 몇이나 되나? 전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존재였는데. . . 그가 저렇게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다시 말해, 송창식 이전에 송창식 없고 송창식 이후에 송창식 없다고 해야할까. 암튼 지난 백년을 통틀어 저만한 천재가 없었으니. . . (밥딜런이 통키타 싱어송롸이터로 그리 유명하지만 그건 그의 곡이 좋은거지 그가 노래를 잘 부르는건 아니니까, 즉, 가창력 면에서는 아주 꽝이고... 글쎄, 존 바에즈는 가창력도 좋고 곡/가사 모두 잘 만든다는 점에서 옆에 세워줄 만 하고. . . 폴 사이먼은 곡/가사는 잘 쓰지만 송창식만큼의 가창력은 아니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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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X윤도현X강승윤 <담배 가게 아가씨♬> 롤모델의 롤모델의 롤모델 3人 3色 레전드 노래 릴레이 [악인전] 20200718
202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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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X윤도현X강승윤 <담배 가게 아가씨♬>
롤모델의 롤모델의 롤모델 3人 3色 레전드 노래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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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송창식을 왜 불러. 다시보기(2011-07-03(일)_01
201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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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송창식을 왜 불러. 다시보기(2011-07-03(일)
대중 음악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내레이션: 윤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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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다큐 마이웨이 (송창식) 풀버전 고래사냥 가나다라 담배가게아가씨 윤도현 송가인
2020. 8. 9
구독자 1.68만명
스타다큐 마이웨이 (송창식편) 풀버전 고래사냥 가나다라 담배가게아가씨 윤도현 송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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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사의 거인 송창식 특유의 감성과 노래 가사에 나타나는 주인공 행동을 연상시켜주는 독특한 애드립부터 클래식 전공자답게 엄청난 성량까지 지닌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전성기 시절 엄청난 퀄리티의 시대를 앞서간 곡들을 뽑아 냈는데 매우 많은 그의 노래들 대부분이 송창식 본인의 작사,작곡이다. 한국 가요사에서 단 한명의 천재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송창식'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강헌이 말하길 가왕 조용필의 맞은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명의 가수라 부를 수 있겠다. 세시봉 출신으로 70-80년대 포크송계를 주름잡았던 가수. 원래는 윤형주와 함께 듀엣 트윈폴리오로 데뷔했다가 윤형주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1970년에 솔로로 전향한다. 특유의 대충 부르는 듯 하지만 절대로 따라부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창법이 특징이다. 마치 해탈한 도인이 너털웃음을 짓는 듯 한 가창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따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흉내만 내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다. 아닌게 아니라 음악으로 득도한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 막말도 잘 하고 노래에 자부심이 상당한 조영남도 노래에 대해 전혀 태클을 걸지 못했다 할 정도.[2] 더불어 고아 출신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도 가출하여 친척집도 여기저기 다니고 어릴적에 참 고생했다고. 90년대 뭐 언론이 어머니를 뵈실 생각이 있냐니까 잊었다고 했다. 하긴 그 언론도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윤형주는 경기고 출신 연세대 의대생[3]의 엘리트 이미지라면, 송창식은 서민적인 이미지로 대변된다. 윤형주가 특유의 맑은 미성과 (수백곡의 CM송을 작곡한 데서 알 수 있듯) 대중친화적인 작곡 능력을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의 '팝(popular)' 음악을 선보였다면. 송창식은 유니크한 톤의 보컬과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작곡을 통해 송창식 특유의 예술세계를 담은 음악을 선보였다. 사실, 보컬로서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기타리스트로서도 상당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세시봉 중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이고 전문가 중에서도 보컬보다 기타 실력을 더욱 부각해서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참고로 송창식의 예술성이 어느 정도 깊이인지를 좀 더 느껴보고 싶다면, 월간 객석[4]에서 클래식 신예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진주가 그와 나눴던 인터뷰(2015년 8월호)를 일독하길 바란다. 일반인이 보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어렵고 심도깊지만, 그가 음악에 대해 어느 정도로 연구하고 어떤 철학을 가지며 연습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것은 충분할거다. 이는 물론, 윤형주에겐 예술성이 부족하고 송창식에겐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중2병스러운 비교가 아님을 밝힌다. 각기 다른 음악의 방식으로 일가를 이룬 두 거장들을 비교해서 누가 더 낫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유념하자. 어차피 그런 비교는 어차피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금전 관리가 철저했고 사업수완이 있었던 윤형주는 많은 재산을 축적해 재산가가 된 반면에[5] 사람이 너무 좋아서 보증도 서 주고 돈도 꿔 달라는 대로 꿔 주던 송창식은 많은 재산을 잃었다. 물론, 송창식이 돈을 잘 벌던 시절에 알랑대며 돈을 꿔 간 사람들 중 제대로 갚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빈털터리인 것은 아니며,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작권료로만 매해 7,500만원의 고정 수입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쓸만큼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라 그 시절 돈을 꿔가고 보증을 서준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도 없다고 한다. 윤형주와는 트윈 폴리오를 하기 전 부터 절친한 사이였고 지금까지도 그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 세시봉 멤버들이 나와서 토크할때 송창식씨의 가난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것을 넘어서 달랑 기타 하나를 들고 노숙하면서 지내고 노래 불러주면서 밥을 얻어먹고 이 집에서 며칠 저 집에서 며칠 하는 식으로 생활했을 정도로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그의 최종학력은 서울예고 중퇴. 동창으로는 금난새가 있다. 금난새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음악에 정말 천재였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가난해서 매일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바로 송창식. 애초에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꿈꾸는 클래식 전공자였으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중도 포기했다. 이후 방황하다가 클래식 창법으로 대중가요계에 등장한 조영남을 만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세시봉과 오빈스캐빈에서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김민기, 양희은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을 만났고 특히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를 하면서 재능이 만개했다. 주)위 내용은 나무위키에서 발췌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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