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영리화 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6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원희룡 지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의료영리화 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6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원희룡 지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을 허가한 원희룡 제주지사가 ‘내국인 진료 금지’를 조건부로 내세웠지만, 병원 쪽이 이를 어길 경우 마땅한 법적 제재 장치가 현재로선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영리병원이 문을 열 경우 의료영리화가 가속화되고 건강보험체계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 5일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허용하면서 “내국인 진료 금지를 조건으로 허가하기로 결정하면서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밝혔다. 병원 허가 조건에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하도록 명시할 경우, 이를 근거로 내국인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면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진료거부가 아니라 녹지병원이 이 조건을 어기고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할 경우다. 현행 의료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응급환자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녹지병원이 이런 이유를 대며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면 제재할 방법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 대한의사협회 등 보건의료단체들도 현실적으로 ‘내국인의 진료 금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주도는 7일 이에 대해 “제주도가 영리병원 허가권은 물론 취소권도 갖고 있기 때문에 병원이 조건부 ‘내국인 진료 금지’를 위반하면 허가 취소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도 “외국의료기관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에 따라 설치되는 것이고, 최종 허가권자는 도지사이며, 감독권도 제주도가 갖고 있다. 개설 허가 조건은 가장 근본적인 준수사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녹지병원이 내국인 환자 진료에 따른 제재를 이유로 소송을 낼 경우 법적 다툼의 소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내국인이 외국인의 이름을 빌려 환자로 등록해 진료를 받으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특히 녹지병원의 운영주체는 중국의 유한회사다. 제주도가 병원 쪽에서 내국인을 환자로 받았는지 감시·감독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주도가 2016년 펴낸 ‘외국의료기관 오해와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도가 2016년 펴낸 ‘외국의료기관 오해와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도의 이번 결정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영리화 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 허가의 전제 조건이 되는 제주특별법과 ‘제주도 보건의례특례조례’에서도 복지부와 제주도가 주장하는 것처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여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허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제주특별법 제309조(외국의료기관·외국인전용약국의 법 적용)는 ‘외국의료기관과 외국인 전용 약국에 대하여 이 법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는 의료법과 약사법을 준용한다’고 명시돼 있어 의료법 제15조 1항을 반드시 따르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도는 영리병원에 대해 2016년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도가 펴낸 ‘외국의료기관 오해와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보면, 제주도는 “외국의료기관은 해외 의료관광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의료기관이지만, 내국인(도민)도 진료는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도는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의 녹지국제병원 설립 승인으로 영리병원 논란이 일자 이듬해 이 소책자를 냈다. 도는 또 이 책자에서 “우리나라 모든 의료기관은 어떠한 환자든 간에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병원은 인종과 국가, 종교를 떠나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제주도가 지난 5일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고 외국인 의료관광객에 한해서만 진료한다’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내준 데 대해 “내국인 진료 금지를 수용할 수 없다”는 녹지병원 쪽의 반발은 충분히 예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