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제시대때, 1912년 및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4개 글자를 정리하였다.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주도했던 '조선어학회'는
그 당시 판단에는 별로 한국어 표현에 별로 사용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삭제했지만,
이 4글자를 삭제함으로 해서, 9가지의 소리표현 방법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때문에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생기게 되었다.
즉,
'P'과 'F' 발음을 구분해서 표현할 수 없게 되었고,
'B'와 'V' 발음을 구분해서 표현할 수 없게 되었고,
'L'과 'R' 발음을 구분해서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훈민정음에 있는 원래의 모든 표기법을 활용하면, 이런 발음들을 다 구분해서 표기할 수 있다.
중국어를 훈민정음의 표현방법을 바탕으로, 한국사람들에게 중국어를 쉽게 가르치는 활동을 하는 이현준 대표의 강의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만, 원래 창제되었던 28자중 4개의 글자를 정리한 것에 대해서, 일제가 없앴다는 취지의 얘기는 착오가 있는 것같다. 당시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주도했던 것은 주시경선생의 제자들이고, 한국어를 효율적이고 통일된 체계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했었고, 일제의 탄압에 의해 많은 회원들이 투옥까지 되었었다.
오히려, 한국어의 문법적 체계의 기반을 잡고, 맞춤법 통일안을 만듦을 통해서, 민족의 독립의 기반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리된 4글자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빠르게 쉽고 체계적인 맞춤법을 완성하기 위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어쨌건,
중국어 공부에 훈민정음을 활용하여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고, 음양오행(목화토금수), 아설순치후의 불(화, 설음, 'ㄴ')과 물(수, 후음, 'ㅇ')이 제일 중요하다는 언급과 실제로 중국에서는 받침이 'ㄴ'과 'ㅇ'만 남았다는 것은 신기하다.
(참고) 주시경 선생(1876.12.22 ~ 1914.7.27) 한글맞춤법을 통일하는 연구 진행, 1910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기초가 되는 책을 출간. 1914년에는 국어음운학의 과학적 기초를 확립한 '말의 소리'라는 책 출간.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주도한 '조선어학회'는 1933년10월29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공표.
한글을 자신들의 문자로 받아들인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현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한국인 교사 정덕영씨와 민간 단체의 노력으로 10년동안 이어져온 찌아찌아족의 한글 배움을 유동엽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제법 능숙한 발음으로 부르는 우리 동요.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학생들입니다. 칠판에는 찌아찌아 말이 한글로 적혀 있고, 책상에는 한글 이름표도 붙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2010년부터 유일한 한국인 교사로 활동하는 정덕영 씨. 인구 6만 명의 도시에서 10년 동안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정 씨에게 한글을 배웠습니다. [정덕영/찌아찌아족 한글 교사 : "큰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데도 지금은 이곳에서 저와 같이 한글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들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정덕영 씨가 한글을 가르치며 찍어온 사진들. 시장 입구 간판에는 찌아찌아말을 옮긴 한글 문구와 시장이란 말이 나란히 적혀 있고, 버스 정류장 간판도 한글, 심지어 동네 이름도 '한국마을'입니다. 한때 국내의 관심이 줄고 지원도 끊기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 민간단체가 개인 후원금을 모아 한글 교육을 돕고 있습니다. [김한란/한국 찌아찌아 문화교류협회 회장 : "(정덕영 선생님) 혼자서 다 감당 못 하셔서 4년 전부터 현지 교사들이 한글을 가르칠 수 있는, 현지 교사 양성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낯선 나라의 글자를 받아들인 지 올해로 10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은 이제, 편하게 쓰고 읽을 수 있는 일상의 문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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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찌아족 한글교사 정덕영 "한류 덕에 한글 쉽게 가르쳐요"
송고시간2020-01-13 10:57
"'과학적인 한글 우수성' 확인 보람…현지인 한글교사 양성해야" (서울=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한류 덕택에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쉽게 가르치고 있어요"
인도네시아 부톤섬에서 소수부족어 찌아찌아어를 한글교재로 가르치고 있는 정덕영(58)씨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 3월 처음 찌아찌아족 마을에 왔을 때 이미 TV 드라마'대장금'과 K-팝을 알고 있는 현지인들이 많아 한글공부를 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구 7만명인 찌아찌아족은 공용어로 인도네시아를 쓰며 고유 언어를 갖고 있지만, 이를 정확히 표기할 문자가 없었다.
그러다 2008년 부족 표기법으로 한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족어로 대화를 나누지만 이를 적는 문자로 한글을 쓰는 것이다. 다양한 말소리를 표기할 수 있고 익히기 쉽다는 점에서 한글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씨는 2010년 3월 찌아찌아족을 가르칠 훈민정음학회 교사로 처음으로 부톤섬에 파견됐다.
그런데 정씨는 2010년 12월 재정·행정적인 문제로 귀국해야 했고, 2012월 1월 부톤섬에 세종학당이 설치돼 다시 갔지만 역시 재정적 문제 등으로 7개월 만에 철수했다.
결국 2014년 3월 정씨의 지인과 동창을 주축으로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를 창립해 같은 해 4월 다시 부톤섬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찌아찌아족에 오기 전에는 평범한 제약회사 회사원으로 20년간 근무하다 퇴직 후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에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쳤다.
정씨는 2006년 7월 KBS '우리말겨루기'에 출전해 우승할 정도로 실력을 갖췄고, 고려대에서 한국어 교육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현재 바우바우시 부기두아국립초등학교·까르야바루국립초등학교 등 초등학교 3곳, 바우바우시 제2국립고교 등 고교 2곳, 보육원 1곳에서 400여명의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7년여 동안 찌아찌아족 1천여명이 한글을, 또 다른 1천여명이 한국어를 그로부터 각각 배웠다.
그는 "찌아찌아족 어린이들에게 한글공부를 시켜보니 의외로 재미있어 하고 빨리 이해해 놀랐다"며 "과학적인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다.
현지에서 한글교육을 하는 데에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정 씨가 현재 무엇보다 가장 바라는 것은 현지인 한글교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 교사가 언제까지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한글 교육의 맥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현지인을 상대로 교수법을 제대로 교육시켜 교사로 양성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