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사의 판결은,
정의의 가치를 판단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그런데,
그런 판사들이, 법정에서
불법을 저질러 왔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근혜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정권과 결탁하여 벌인 사법농단 내용을 보면
참으로 심각하다.
법정이 부패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법정의 부패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공수처는 이러한 부분에도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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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 네덜란드의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가 그린 ‘캄비세스 왕의 심판’ © Wikipedi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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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어떤 의자에 앉아 판결하고 있는지 명심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dW4vz07dYho
게시일: 2018.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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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군주 캄비세스 왕의 명령은 잔혹했습니다.
그는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렸던 재판관 시삼네스를 잔인하게 처형했지요.
그리고 왕은 바로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를 후임 판관으로 임명한 뒤에 말했습니다.
"어떤 의자에 앉아 판결하고 있는지 명심하라" 왕은 잔인했으나, 또한 잔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바로 법이었으니 왕은 정의롭지 못한 판결이 얼마나 부당한가를 만천하에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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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계 내부고발 다룬 연극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초연
박정환
2019.03.20. 14:52
© news1 연극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포스터© 뉴스1
판사 출신의 변호사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2·13기)가 사법부의 비리를 내부고발한 과정을 담은 에세이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가 연극으로 각색돼 무대에 오른다.
연극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는 4월19일부터 5월19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초연한다.
이 작품은 캄비세스의 심판에서 출발해 2018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법농단으로 마무리한다. 신성우 극작가가 에세이를 이야기 순서에 맞게 다듬었다.
주인공 평호는 판사들의 금품 수수를 내부 고발했다가 재임용에서 탈락된 과거가 있다. 그는 변호사를 개업하지만 동료 변호사의 비리 의혹을 공개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서 패소한다.
신성우 극작가는 "신평 변호사의 사법체계에 대한 고민과 그의 직업만 착안하고 나머지는 새롭게 작품을 만들었다"라며 "부당한 판결을 받은 사람이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울연극협회장을 지낸 박장렬이 연출을 맡고, 맹봉학, 김용선, 정종훈, 김지은, 문창완, 김진영, 최지환 등이 출연한다.
한편, '캄비세스의 심판'은 부정한 재판관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린 사건이다.
페르시아의 황제 캄비세스는 시삼네스 판사가 뇌물을 받고 잘못된 판결을 하자 재발을 막고자 그의 피부가죽을 벗겨 판사석에 깔도록 명령했다. 황제는 시삼네스의 아들 모타네스를 새 재판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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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비세스의 재판 (The Judgment of Cambyses ) - Gerard David
2011. 4. 24. 19:34
Gerard David (ca. 1460~1523)
The Judgment of Cambyses (left panel)
1498
Oil on wood
202 x 172.8 cm
Groeninge Museum, Bruges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벨기에 브뤼헤 시의회의 첫 공식 주문작으로, 브뤼헤 시청 시의회 상원 집무실에 걸렸던 작품이다. 이 그림은 ‘정의’라는 추상적 주제와 가혹한 법 집행을 신학적 비전으로 고양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중요한 작품이다. 시청 시의회실은 송사가 집행되는 법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법정을 장식하기 위해 중세에 선호되던 주제는 시 의회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시민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모범적 예화를 담은 장면들이었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그림 양쪽이 책 처럼 열리는 패널 형식이며 네 부분의 일화로 구성되어 있다. 왼편 ‘체포’ 패널의 후경에는 부패한 판관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전경은 캄비세스 왕의 명령으로 시삼네스가 체포되는 순간이 담겨있다. 오른편 ‘처형’ 패널의 전경에는 체포된 시삼네스의 가죽을 칼로 벗기는 처형 장면이 눈에 띄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후경에는 브뤼헤 시청사 ‘정의의 회랑(로지아, loggia)’에 아버지 시삼네스의 피부가죽을 덮은 의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 의자에는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 Otanes 가 새 법관으로 앉아있다.
Gerard David (ca. 1460~1523)
The Judgment of Cambyses
1498
Oil on wood
202 x 172.8 cm
Groeninge Museum, Bruges
이 그림의 바탕이 된 문헌적 전거는 헤로도투스의 [역사]와 동방 기원의 전설과 후대의 모범이 될만한 정치적 교훈적 일화들을 모은 [제스타 로마노룸]이다. [제스타 로마노룸]은 16쇄를 거듭한 책으로서 [플루타르크 영웅전]처럼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마크로비우스, 아울루스 겔리우스, 플리니우스, 세네카, 보에티우스, 오비디우스 등의 글에서 도덕적 판단에 교훈을 주며, 모범이 될 수 있는 예화를 고루 엮은 책이다. 이 책의 29번째 일화로, 뇌물 수수와 부패한 재판에 대한 훈계로서 뇌물 받은 재판장의 껍질을 벗기는 잔혹한 형벌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뇌물 수수에 대한 경고와 정의의 권장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캄비세스 황제는 판관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부패한 판결을 내렸음을 알자 그 가죽을 벗겨 죽이는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나서 그 아들 오타네스에게 아버지의 벗긴 가죽 위에 앉아 송사를 보라고 명령한다. 교훈은 이러하다. ‘누군가 그대에게 악을 행하도록 충동한다면 그의 운명을 기억하라. 그대 아버지의 운명을 내려다보고 그의 운명이 그대에게 닥치지 않도록.’ 지나치게 가혹한 감이 있지만, 뇌물 수수에 대한 경고 및 정치적으로 바른 행위에 대한 교훈을 담은 고전이 다비드가 제작할 당시 브뤼헤에서 널리 읽혔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세의 잔영으로 인해 법이 지나치게 엄격했기 때문에 광장에서의 고문이나 처형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정의는 중세의 아홉개 미덕 중의 하나이다. 고대 이래 ‘정의 Justice’의 재현에는 정의를 의인화한 유스티치아 Justitiae가 대표적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유럽의 수많은 시청사 앞에 조각되었다. ‘정의’는 저울과 검을 들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눈을 띠로 묶은 모습이다. 정의를 판단하는데 있어 눈이 먼 모습은 의외이지만,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표피적 현상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헨드릭 콜치우스를 복제한 야콤 마탐의 동판화 [정의(Justice)]
Sanzio Raffaello (1483~1520)
Justice (ceiling tondo)
1509-11
Fresco
diameter 180 cm
Stanza della Segnatura, Palazzi Pontifici, Vatican
저울은 균형을 잡는 척도로서 공정함을 나타내고, 검은 날카로운 판단력을 나타낸다. 성서의 재판과 관련된 장면들은 시청사를 장식했던 공공미술로 빈번히 사용되었다. [솔로몬의 판결(한 아이를 두고 진짜 어머니를 가리고자 다투는 여인들)], [수잔나와 장로들], [에스더와 아하수에르스],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 [최후의 심판] 등은 주로 옳고 그름, 선악을 분별하는 재판이라는 뜻을 담고 공공미술의 주제로 자주 채택되었다.
보통 성당의 서쪽 파사드에 묘사되곤 하던 [최후의 심판]은 심판(재판, 따라서 ‘정의’)을 다루기에, 법정으로도 사용된 유럽 시청사 시 의회실의 공공미술 주제로 자주 사용되었다. 한스 메믈링의 [최후의 심판]은 당시 시 의회실을 장식한 그림이다. [최후의 심판]에는 대개 그리스도가 심판관의 자리에 위치해 있고, 성 미카엘이 죄의 하중을 가늠하는 저울을 들고서 구원받는 자와 죄 받은 악인들을 상하로 나눈다. 보통 교부와 천사들, 복음사가들이 있는 위쪽은 천국이고, 연옥을 지나 저울의 아래쪽은 무덤과 지옥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라르 다비드의 작품인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성 미카엘의 모습 역시 주목할만 하다.
Gerard David (ca. 1460~1523)
Altarpiece of St Michael
Oil on wood
66 x 53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Hans Memling (ca. 1440~1494)
Last Judgment Triptych (central)
1467-71
Oil on wood
221 x 160 cm
Muzeum Narodowe, Gdansk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당시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생각했던 관념인 분배와 보복의 정의 중 구약성서적인 의미에서의 보복, 정의를 다루고 있다. 예컨대 시에나의 팔라쪼 푸블리코에 있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표적 공공미술인 프레스코화 암브로시오 로렌체티의 [선한/나쁜 정부의 알레고리 : 선하고 나쁜 정부가 각각 도시와 지방에 미치는 효과]에서도 ‘공정한 정의’의 모습은 ‘분배의 정의’와 ‘보복하는 정의’로 구별되어 묘사되기도 했다.
Ambrogio Lorenzetti (ca. 1290~1348)
Effects of Good Government on the City Life (detail)
1338-40
Fresco
Palazzo Pubblico, Siena
분배의 정의와 보복의 정의
‘보복의 정의’라 함은 보통 재판의 결과인 처형과 직결된다. [캄비세스 재판]에서 칼로 껍질을 벗기는 장면 즉, 처형받는 시삼네스의 고통과 얼굴의 찡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치 공공장소에서 해부당하는 사람을 구경하듯 충격적이다. ‘칼과 피부의 벗김’이라는 점에서 도상적으로는 아폴로와 마르시아스 및 벗겨진 피부와 연관되며, 피부를 벗기는 칼을 상징 지물로 들고 있는 성 바르톨로뮤의 처형과도 연관성이 있다. 또한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던 정치범에 대한 스펙터클한 고문과 처형의 관례와도 관련이 있으며, 당시 유럽 각지의 대학에서 처음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공개 해부수업도 떠올리게 한다. 그 외 이 작품과 관련지어 재판 및 처형과 관련한 ‘보복의 정의’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네덜란드의 화가 디르크 보우츠의 그림 [황제 오토 III의 재판]을 들 수 있다. [캄비세스 재판]과 마찬가지로 책처럼 펼치게 되어있는 패널 두 개로 이루어진 딥티크 형태인 이 작품 역시 해석이 간단치 않은 작품이므로 다음 기회에 보다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좌) 로흐너 화파 [성 바르톨로뮤의 순교] 약 1450-1500, 패널위에 템페라, 61x59cm, 피나코테카 바티카나, 로마
(우) 독일 쾰른 시청사의 '정의' 조각상 장식
이와 같은 ‘정의 Justice(‘심판’, ‘재판’이라는 뜻도 있다)’ 장면들이 유럽에서 시청 장식의 관례적 주제로 되풀이된 까닭은 사법 및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모범적 예화로 형상화된 작품을 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함을 잊지 않도록 고전의 교훈을 항시 되새겨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에서는 그 리얼한 묘사로 인해 강하게 눈길을 끄는, 처형의 고통이 아로새겨진 ‘처형’ 패널이 그림의 중심이 된다고 볼 수 있지만, 책을 읽듯 사건의 시간 순서대로 왼편 ‘체포’ 패널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화면 중심에는 암울한 얼굴로 체포되고 있는 판관 시삼네스가 있다. 그 주위에는 동시대 복장을 입은 인물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 체포되는 시삼네스의 위편에는 회색으로 처리된 고부조형의 라운델이 두 개 있다. 그 중 오른쪽 라운델 안의 형상은 아폴로와 마르시아스, 왼쪽은 세레스와 트립톨레무스 혹은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확한 도상이 아니므로 분명치는 않다. 화가 제라르 다비드는 어쨌든 이런 도상을 메디치가 콜렉션의 고대 코르넬리안 인타글리오 cornelian intaglio(부조와는 반대 형식으로 얇게 음각한 보석 메달리온. 반지와 같은 보석 장신구에 카메오와 함께 많이 사용됨. A. D. 2세기 경에 유행) 상감에 기초해서 그려넣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Gerard David (ca. 1460~1523)
The Judgment of Cambyses (detail)
이 같은 메디치 코르넬리안 인타글리오 타입의 라운델은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기베르티에 의한 금세공 세팅을 통해 북구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말해지지만, 다비드가 정확히 어떤 버전을 참조했을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당시 미술품 주문의 관례에 따라 주문자들이 주문할 때 다비드에게 메디치 카메오를 그대로 복제한 같은 타입의 메달리온 혹은 판화를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비드는 오른편 라운델 안의 아폴로를 특이하게도 여성의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나무에 묶인 마르시아스는 신에게 거역한 피조물의 반역에 대한 엄격한 처벌의 형상화이다. 여기서는 오만과 위선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이 마르시아스 도상은 브뤼헤 1484년 판본의 [도덕화된 오비드] 혹은 [변형담]에서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서양 근세의 공적 주문은 정책 담당자인 시 의회 및 정부에 의해 세부사항까지 묘사를 상세하게 지정하는 가운데 주문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코르넬리안 인타글리오 반지
글 출처 : 네이버 캐스트 (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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