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이 말은플라톤의『국가』에 나오는 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는 강한 자의 편익'이라는 명제에 대해 반론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선거를 맞이 하여 정치철학의 고전들에서 석학들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구절들을 선별해보았습니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일세. 훌륭한 사람들이 정작 통치를 맡게 될 때는, 그런 벌을 두려워해서 맡는 것으로 내겐 보이네. 그리고 그때 그들이 통치에 임하게 되는 것도 그들이 무슨 좋은 일에 임하기라도 하거나, 또는 그런 일로 안락하게 지내게라도 되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부득이한 일에 임하는 것이어서, 그리고 자신들보다도 더 훌륭하거나 또는 자기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들에게 그걸 떠맡길 수가 없게 되어서 일걸세. 만약에 훌륭한 사람들의 나라가 생긴다면, 그러한 나라에서는, 마치 오늘날 통치를 맡으려는 것이 싸움거리가 되는 것처럼, 서로 통치를 맡지 않으려는 것이 싸움거리로 될 것 같기에 말일세. 그리고 이 경우에 진실로 '참된 통치자'는 본성상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게 되지 않고, 다스림을 받는 쪽에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게 될 것임이 명백해질 것 같기에 말일세. 그래서 식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다 남을 이롭도록 하느라고 수고를 하느니보다는 오히려 남의 도움으로 자신이 이롭도록 되는 쪽을 택할 걸세. 그러므로 나로서는 이 점에 대해서, 즉 올바른 것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라는 것에 대해서 트라시마코스와는 도저히 의견을 같이할 수 없다네."
<맨 인 블랙>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배우 윌 스미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플라톤의 <국가>를 가르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읽지 않고는 미국 시민이 될 수 없어요.
”뼈 있는 농담이라면 빠지지 않는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살아 있다면 이 할리우드 배우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어이, 윌. 내가 전에 말했듯이, 고전이란 모두가 칭찬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네. 그러니 자네 말대로라면 미국은 미국 시민이 살지 않는 나라가 되겠는걸.” 윌 스미스, 의문의 1패.
권력의 부정부패 뉴스가 불거지거나 선거철이 다가올 때면 소셜미디어 이곳저곳에서 플라톤의 경구 하나를 만나게 된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같은 내용의 다른 버전도 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정말로 플라톤의 <국가>에는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하지만 윌 스미스의 권고대로 그 책을 정말로 읽으면, 이 경구에 ‘좋아요’를 표시하기 전에 잠깐 머뭇거리게 된다. 플라톤은 <국가> 제1권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트라시마코스라는 소피스트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 논쟁에서 소크라테스는 대략 다음 요지의 의견을 펼친다.
“통치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욕심과 야망이 없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라서, 돈도 명예도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훌륭한 사람들이 통치에 나서도록 만드는 방법은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훌륭한 분들이 스스로 통치에 나서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치르는 가장 큰 대가는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이들이 정작 통치를 맡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대가에 대한 우려 때문인 듯합니다.”
요컨대, 결국에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자진해서 통치하게 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말이고, 해당 시대의 통치자들은 돈도 명예도 관심 없는 해당 시대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며, 이 훌륭한 사람들의 통치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요청한다는 취지의 경구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엘리트주의적 논리 전개에서 나온 말인 것이다. 누군가가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원래의 어구를 수정해서 퍼뜨린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장본인을 한 사람의 지식인이라고 여기며, 이름 모를 이 지식인의 순차적 작업을 상상하면서 빙그레 웃음을 짓게 된다. 그는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고대의 철인정치 철학자께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집필한 위대하고 고매한 정치철학서 <국가>에서 문제의 구절을 발견한다.
이 구절을 그 밑자락에 얽혀 있는 엘리트주의적 궤변으로부터 우두둑 거칠게 뜯어낸 뒤, 거기에 딸려 올라온 먼지를 탁탁 털어낸다. 경구를 명심할 주체들을 ‘모든 시민들’로 바꾸는 것이다. 다음 작업으로 칼을 들어 문구를 슬쩍 다듬는다. ‘스스로 통치에 나서지 않는’을 ‘정치에 무관심한’으로, ‘자기들보다 못한’을 ‘가장 저질스러운’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면, 우리가 자주 본 그 명언이 된다.
저질의 정치에 피해를 보는 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명언, 정치의 품질에 대한 시민들 자신의 책임을 깨닫게 하는 명언, 적극적인 정치적 관심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언의 탄생이다.
그러니 이 경구를 어느 무지한 자의 플라톤 왜곡이라고 오만하게 비판하지 말자. 고전의 권위와 명성에 주눅 들지 않는 무명의 용감한 지식인이 공화적 상상력으로 참신하게 살려낸 문장이다. <국가>를 읽는 것보다 이 명언 하나를 명심하고 실천하는 게 백배는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윌 스미스, 의문의 2패.
세수는 정부의 수입이다. 세수 추계, 그러니까 세금이 얼마나 걷힐건가에 관한 추정은 한해 예산수립의 기초가 되는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돈이 들어오는 데 맞춰 씀씀이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세수추계가 올해도 큰 오류를 냈다. 기재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만 국세수입이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43조 6천억 원 증가했다. 기재부는 애초에 잡았던 국세수입 예산(282조 7천억 원)보다 더 걷힐 국세수입 규모를 무려 31조 5천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올 5월까지 실적을 보면 초과세수가 이보다도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기재부가 세수추계를 틀린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과 2017년 각각 9조8000억원, 14조3000억원을 더 걷었고, 2018년엔 세수 오차율이 9%를 넘어 무려 25조4천억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사상 최대규모였다. 통상적인 학설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을 1% 가감할 때 세수가 2조원쯤 차이가 난다. 이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2~3% 안팎을 오고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세수추계 방법론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20조원의 초과세수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전년대비 10% 경제성장을 기록했다는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는 경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가 펼 수 있는 경제정책은 크게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둘이 있다. 통화정책은 통화의 수량을 늘리거나 줄여서 국내경제의 흐름을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정책이다. 재정 정책이란 주로 경기를 안정시키거나 부양하기 위하여 정부의 세입과 세출의 크기를 조정하는 경제정책이다. 그러니까 경기가 과열이 되면 세입을 늘려 경기를 진정시키고, 경기가 침체되면 정부의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한다.
지난해와 올해 전세계는 코비드-19으로 인한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가장 잘 방어했다는 한국경제도 -1.1% 성장을 기록했다. 그런데 기재부가 마치 한국경제가 과열이나 됐다는 듯 무려 31조를 빠트리며 예산을 축소편성해버린 것이다. 경기가 좋지 못한 데도 재정확대 정책을 효율적으로 펼치기 어렵게 만든 셈이다. 게다가 이런 추계차이로 인한 잉여세수는 대개 추가경정예산으로 집행하게 된다. 추경은 심의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진행이 될 수 밖에 없다. 집행자의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데이터 개방과 집단지성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공공데이터 개방에는 크게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정부가 보유한 유용한 데이터들을 민간에서 활용하라는 뜻이다. 국립박물관이 보유한 한국의 전통문양 데이터베이스를 모두 오픈소스로 열어 전세계가 쓰게 한다던가, 전국의 명승지 사진을 모두 공개해 여행업체들이 자유로이 쓸 수 있게 해주는게 그런 일들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을 투명하게 만들어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려 25조가 넘는 초과세출을 거둔 이듬해인 2019년에 이런 개선방안이 얘기가 됐다.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예산안뿐 아니라 세수를 추계하는데 쓴 전제와, 전년도 세수 추계의 오차 원인 분석 그리고 개선사항 등도 포함해 공개하자는 안이다. 세수가 왜 그만큼 들어올 것이라고 추정했는지 계산의 근거를 함께 제출해 검증을 받자는 것이다.
세수추계모형과 관련한 데이터들을 공개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민간의 경제연구소들과 전문가들이 세수추계모형을 들여다보고 리뷰를 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제공된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세수추계모형을 만들어 비교해볼 수도 있다. 이런 작업들이 모이면 집단지성이 된다. 정부가 별다른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세수추계모형이 점점 더 좋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제공하고 모델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이런 일을 이룰 수 있다.
숫자가 말을 하게 하자
지방자치단체가 쓰는 복지 예산도 공공데이터 개방을 통해 한결 낫게 만들 수 있다. 현재 지자체별 지역사회보장계획에서는 소득 불평등이나 빈곤의 축소와 같은 정책목표 설정이나 성과 평가가 불가능하다.. 광역 및 기초 지자체 수준에서 소득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지표들을 측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행정 데이터가 지자체에 공유가 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 그가 드는 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의 데이비드 그러스키(David Grusky) 교수는 2017년 미국의 “절대적 소득이동성”(absolute income mobility)이 감퇴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Chetty et al. 2017). 1940년대 출생 세대가 30세에 부모의 소득을 넘어설 확률이 90%가량이었는데, 1980년대 출생 세대가 그럴 확률은 50%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가 연구에 사용한 자료는 미국의 인구총조사(Census) 및 현재인구조사(Current Population Survey) 자료와 함께 개별 납세자들이 국세청에 제출한 소득세 신고서(tax return)였다. 미국에서는 소득이 있는 개인들은 대부분 소득세 신고를 하는데, 자녀가 있는 경우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자녀들의 사회보장번호를 기록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들의 소득세 신고서에 기록된 정보를 토대로 이 자녀들이 자라서 30세에 낸 소득세 신고서를 추적할 수가 있다. 소득세 신고서의 정보를 토대로 1천만이 넘는 부모-자녀 간의 소득 결합분포를 직접 추정해 이런 놀라운 미국 사회의 변화를 밝혀낸 것이다.
흥미로운 연구는 이뿐이 아니다. 스웨덴의 행정등록 데이터를 이용한 한 연구는 3세대 내지 4세대 간에 걸쳐 증조부 내지 고조부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스웨덴 통계청이 2000년에 구축한 다세대 행정등록 자료 덕분에 이러한 연구가 가능했다 (Hällsten 2014). 미국에선 교육행정데이터와 국세청 데이터를 연계한 빅데이터를 토대로, 우수한 교사들(high-quality teachers)이 향후 학생들의 장기간 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Chetty et al. 2014) 등이 있다.
개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개방한다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조세와 복지 급여의 소득재분배 효과 등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조세-급여 모델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현대 한국사회에도 대단히 긴요한 일이다. 복지지출의 효과를 정확히 숫자로 확인할 수 있으면 얼마나 재정지출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겠는가. 번연히 데이터가 있는데도 주먹구구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현실은 몹시도 어리석다.
공공데이터 개방의 기본원칙은 ‘개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개방한다’이다. 공공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것은 돈을 낸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므로 세수추계모형은 당연히 공공재다.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예산안뿐 아니라 세수를 추계하는데 쓴 전제와, 전년도 세수 추계의 오차 원인 분석 그리고 개선사항 등은 마땅히 함께 공개해야 한다. 이 원칙에 따라 국회가 조속히 입법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2부. 오밤중 파이터] 주제1. 조국 딸 친구 증언 번복 ① 조국 딸 고교동창 "조민, 세미나 참석했다"…입장 번복한 이유는? ② 조국 "가족 인질극" SNS 호소…'검찰 협박' 의혹 제기? ③ "조국은 검찰 권력 피해자"…진술 번복에 엄호 나선 與? ④ "세미나 참석 맞다" 말 바꾼 조민 동창, 위증죄 적용되나? ⑤ "조민 참석했다"고 말 바꾼 외고 동창, 조국 재판에 영향 줄까?
주제2. ‘법사위 양보’ 후폭풍 ① 민주당, 법사위 권한 축소 개정 약속 미이행시 ‘여야 합의 파기’? ② 與 ‘법사위 양보 논란’에 지도부·국회의장 탄핵론까지? ③ 민주당, 법사위원장 후폭풍…대선주자들도 찬반 분분? ④ 상임위 재배분 합의 이후 與, 언론중재법 향후 절차 강행 예고?
Edward Lee 7월 16일 오전 7:14 · 추미애의 깃발, 촛불 혁명의 완성 사회대개혁=사법, 언론, 재벌개혁 “추미애가 옳다”, 시민 집단지성 결집 . 추미애가 깃발을 들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추다르크로 연동되면서 '전사'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미 그가 살아온 역정에 맞추어 그런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추미애의 깃발'이다. 매우 간결하면서도 당찬, 어찌 보면 무서운 전략이다. 그는 이렇게 잔다르크처럼 목숨을 건 게다. . 좀 더 실체적으로 접근하자면, 그는 촛불 혁명을 완수하는 것이 시대가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한 때 피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시대를 온몸으로 체화하고 그 강을 건너면서 '업'이나 '운명'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법무부 장관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난 후 대권 도전을 결정하기까지, 상당히 고통스럽고 우주의 미아가 된 듯한 심정이었다고 토로한다. 시대의 짐을 짊어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연민마저 인다. . 이 기간에 그를 끌어준 사람이 시민사회운동을 왕성하게 해온, 북콘서트 사회를 맡고 있는 김민웅 교수다. 그를 유심히 살펴보던 김 교수가 추미애 장관에게 혹독한 질책과 다름없는 고언을 했다. 추 장관의 표현을 빌자면 영혼까지 털어냈다고 한다. 수많은 시민들의 성원도 물론이지만, 시대를 고뇌하며 시민사회운동에 앞장선 한 인간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진정성이 없었다면 이 두 사람의 교감이나 만남은 불가했을 것이다. .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놓고 하나로 의기투합한 결과물이 '추미애의 깃발'이요, 후보 추미애다. 이들이 내 걸고 있는 기치는 깃발이 상징하듯이 촛불 혁명군(시민 집단지성)의 재결집이다. 그래서 추미애의 깃발은 촛불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진원지'다. 시민들이 추미애와 함께 깃발을 들면 혁명이 완성되는 것이다. 추미애는 “시민들이 곧 자신의 모든 것이고, 시민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손을 잡아달라”고 솔직하지만 피끓는 심정으로 말한다. 시민의 힘으로 진정한 시민의 시대를 열고 ‘사람이 높은 세상’, ‘사람을 높이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 . 그러면 왜 우리가 그의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가? 왜 꼭 그인가? 광화문과 서초동 광장이 좁을 정도로 누비던 김민웅 교수는 왜 그토록 그를 질타하면서까지 고행길을 자처하는 것일까? 민주당 내에서조차 비주류로 치부되고, 신권력 카르텔로부터 온갖 견제를 받고 장관직을 사퇴, 검찰개혁을 마무리하지 못한 이가 아닌가? . 역설적이게도 이런 추미애이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젖어 반개혁으로 흐르고 있는 여의도 문법을 거부하고, 혈혈단신으로 조국 장관처럼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며 국힘당과 법조 마피아, 그리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언론은 물론 청와대와 민주당의 견제 및 알력을 그 작은 어깨로 떠받치고 서릿발처럼 무섭게 개혁을 추진한 까닭이다. . 이런 모습은 추미애가 본시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이요 철학이다. 이런 시대정신이 없다면 감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온전히 체화된 자신의 것으로 소명의식이 뿌리를 내린 것이고, 이를 김민웅 교수가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 목숨을 걸만한 일이지 않은가? 그는 5선 지역구 의원이었고, 대선과 지방선거를 압승한 당대표였으며 민주당 지지율을 최고인 56%까지 끌어올린 사람으로 누구보다 정치현안과 지형, 국회의 특성과 우리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를 잘 아는 사람이다. .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하지 못하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다선에 당대표 경력은 엄청난 시너지다. 그러나 이것들은 매우 표피적인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우리가 그의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작금의 우리 현실을 찬찬히 살펴보자. 먼저 부동산 문제부터 시작해 '공정'이라는 물귀신이 이 정권을 얼마나 할퀴고 있나? 자본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빈부의 차이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차별은 또 어떤가? . 한마디로 사람의 세상이 아니다. 추 장관이 "무늬만 민주당"이라고 성토했듯이 껍데기만 사람 사는 세상이지 않은가? 자본의 식민지가 된 이런 사회구조에서는 민주주의도 별 볼일 없다. 의식주도 해결할 수 없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어떤 메리트가 있나? 주거문제로 압박을 받고 온갖 차별이 횡행하며 돈이 돈을 버는 구조에서 어떤 가능성과 희망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 그래서 추미애의 깃발로 모여야 한다. 그가 주창하는 여러 가지 훌륭한 정책과 미래 비전이 많지만, 우리 사회가 당장 풀어나가야 하는 기본 틀이 변화하지 않으면 그 모든 정책이나 비전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토대를 닦아야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제도의 변화, 곧 정상적인 틀을 만드는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주창하는 유일한 사람이 추미애다. . <사회대개혁>이 그것이다. 검찰을 포함한 사법개혁, 언론개혁, 그리고 부동산을 비롯해 공정을 위한 재벌개혁이다. 지대 개혁, 즉 토지공개념과 공정을 위한 특권층을 제도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실질적 공정은 불가하다. 추 장관이 예를 든 것처럼 10 조각낸 피자 중 9개를 특권층이 다 가져가고 나머지 한 조각으로 공정하게 나눠먹으라 하면 폭동이 일어나는 게다. 우리 사회가 공정으로 몸살을 앓고 시끄러운 이유가 이것이다. 참고로 박노자 교수에 의하면 64대 그룹의 매출이 국내 GDP의 84%다. .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제도의 혁신은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골목상권까지 잠식하고 있는 재벌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은 기업에 아무런 흠결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더불어 지도력은 도덕성에서 기인한다. 솔선수범을 보이지 못한 사람이 아랫사람을 통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추미애가 개혁에 가장 적임자다. 이런 사회대개혁 없는 정책과 대한민국 미래 비전은 요란한 말의 성찬일 뿐이다. . 고위 공직자들이 지아비를 들이받으며 집안에 불을 지르고, 검사가 피의자로부터 성상납을 받고, 더 나아가 그를 처로 삼는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나? 그런 자가 대권 주자로 나서고 지지율 1~2위라니, 한심한 정도가 아니라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그런 자들이 들먹이는 민주주의와 공정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나? 더불어 김학의 사건이나 장자연 사건에서 보듯 특권층들의 일탈은 거의 짐승들이나 하는 짓이지 않은가? . 게다가 추미애는 '신세대 평화론'을 주창, 이념으로 우리의 사유와 영혼을 제한하는 분단구조를 허물고 남북평화를 이뤄야 한다며 분단 상황에 천착한다. 남북 공동번영은 물론 유라시아 진출은 경제영역을 확장, 남북의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공정을 가져다줄 것이다. 사회대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깃발을 든 추미애는 우리 사회 현안을 가장 잘 꿰뚫어 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정체성을 찾고 외세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 스스로 서는 진정한 대한민국을 시민 집단지성과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것이 '추미애의 깃발'이 주는 상징이다. 오직 추미애만이 사회대개혁을 부르짖고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신세대 평화론을 주창한다. 가장 현실적이고 화급한 일이자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런 일이 토대가 되어야 비로소 다른 모든 경제정책들과 미래비전이 가능할 것이기에 “추미애가 옳다!”
자신들만의 사적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적폐언론과 힘을 합쳐 마치 자신들을 공정과 정의의 대변자로 포장한 채 민심을 왜곡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검란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심각한 사태 속에서 민주개혁 진영의 촛불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지나치게 신중했으며 180석에 달하는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무기력했다.
지난 27일 열린공감TV의 핵심코너인 강진구의 인사이트에서는 지난 2년 여 간 검란의 광풍 속에서 온갖 정치적 공격과 언론의 마녀사냥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검찰의 쿠데타를 막아냈던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출연해 속 시원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난 추미애 전 장관은 경북여고와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로서의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어 광주고법 판사를 끝으로 정치에 데뷔하면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추 전 장관은 1996년 15대 국회위원에 당선됐으며, 2000년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16대, 18대,19대, 20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촛불정부나 촛불시민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아예 안 할 정도로 시민들의 관심이 멀어진 현 상황에 대해 추미애 전 장관은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음은 추미애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문] 추다르크라는 별명에 대한 평소의 생각은.
답] 추다르크란 애칭이 개인적으론 너무 세다는 느낌도 받지만 거절할 수 없는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당대에는 분명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역사가 평가하는 인물인 잔다르크를 연상시키는 별명이기에 검찰개혁에서 화살받이가 되더라도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추다르크에 대한 별명에 이젠 애착을 갖게 됐다.
▲ 추미애 전 장관과 배우자
문] 사시24회 합격자 300명 중 여성은 3명뿐이라 중매쟁이들의 요청이 쇄도하지는 않았나.
답]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멋진 사람과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에 가치를 뒀다. 다행히 그런 사람을 만나 7년간의 연예를 거친 후 결혼을 했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관철시킨 걸 보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나쁜 딸이 아니었나 싶다.
▲ 춘전지방법원 재임시절 추미애 전 장관
문] 춘천지방법원에 28살의 나이에 첫 입관을 했고 '난쟁이가 쏜 공'이란 서적을 불법서적으로 적시한 검찰의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안다. 초임판사로서 두려움은 없었는지.
답] 1985년은 상당히 엄혹한 시절이었기에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한다는 점에 어느 정도 우려는 했다. 다만 리영희 선생님의 서적이나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이 불온서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밤을 세워 기각 사유를 또박 또박 작성해 내려 보냈더니 다음날 당직 판사가 기각된 사유가 적혔던 사유서를 찢어 버리고 새로 청구한 검찰의 영장신청을 받아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많이 허탈하긴 했지만 누구나 똑같이 용기를 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론 지금도 검찰의 불법적인 행동은 습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검찰총장 직인의 변조가 의심되는 위조파일로 사람을 구속했다는 열린공감TV의 보도와 김학의 출국금지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이규원 검사를 기소한 검찰의 행위는 상당히 선택적인 기소라고 생각한다.
▲ 강진구의 인사이트 출연진
문] 검찰개혁을 완수하고 법무부 장관직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이젠 다시 법무부장관으로 갈 수는 없고 검찰개혁 완수를 마무리 하려면 법무부장관을 지휘하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답] 시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싶다. 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언론이고 언론을 움직이는 세력은 자본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씀이 떠오른다. 여기에 언론을 움직이는 자본 세력의 반칙과 불법을 돌봐주는 세력이 바로 검찰이다. 공정과 정의를 아무리 외쳐도 검찰의 비호를 받고 있는 조·중·동의 외침에 힘이 부친다.
때문에 이젠 더 이상 절차적 민주주의 안에서 점잖은 해결만을 모색할 때는 아니다. 반칙과 특권에 더해 탐욕스럽기까지 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촛불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시도하지만 기득권은 항상 변함이 없다. 때문에 지금부터는 강단 있고 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한다.
문] 대선까지 약 300일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현 시점에서 대선을 치르기 위한 시대정신이 있다면.
답] 촛불에 응답하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절차적으로 우아한 민주주의보다 힘 있게 해결해가는 강단 있는 리더쉽이 요구된다. 70여 년 간 켜켜이 기득권을 쌓아왔던 기득권자들은 항상 뺏긴다고만 생각을 한다. 국민주권차원에서 견제를 받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들은 겸손함조차 없다.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할 뿐이다.
한 판의 피자 중 5분의 4는 기득권이 먹고 5분의 1만 주면서 반칙 없이 공정하게 나눠 먹어야 한다는 기득권의 생각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특히 검찰과 언론과 자본이 뭉쳐서 형성된 카르텔을 민주적으로만 깰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국민 다수의 힘으로 하나씩 결단을 내리는 리더쉽을 갖춘 강단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법 권력은 사실 국민이 뽑은 권력이 아니다. 국민주권에 대해 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는 그들이 사법적 판단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든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도 그러하고 원전수사도 그러하다. 그들은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국민들의 힘은 그들을 제압할 만큼 더 강해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 방송 준비중인 추미애 전 장관
문] 일각에서는 추-윤 갈등 프레임으로 인해 오히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권주자로까지 부각시켰다는 얘기가 있다. 이에 대한 추 전 장관의 생각은.
답] 추-윤 갈등이라는 프레임은 언론의 잘못된 포장이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법무부장관하고 그 지휘를 받는 공무원과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이는 한마디로 윤석열의 항명이자 하극상이다.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와 징계청구에 대한 브리핑 당시 출입기자들의 행태를 생각해 보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브리핑이었지만 실제 출입기자들은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퇴근시간에 브리핑을 하려 했다며 법무부를 조롱했다. 징계의결서까지 가는 과정에서도 징계대상자인 윤석열은 왜 법무부장관이 징계위를 구성하느냐고 주장했다.
당연히 징계위원회 구성이 인사권자의 인사권에 포함된 내용임에도 말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연일 언론은 윤석열한테 불공정하다는 논조로 보도를 했다. 하지만 징계의결서를 읽어보면 한동훈에 대한 감찰방해와 수사방해가 여러 달에 걸쳐 일어났으며 증거인멸을 하지 못한 배모 차장과 백기자의 휴대폰에서 다양한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한동훈과 윤석열은 2000통이 넘는 통화를 주고 받았으며 심지어 한동훈은 윤석열의 처와도 통화를 했다. 당시 기자들은 윤석열의 수사방해가 헌법가치에 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살아있는 검찰의 권력에 눈을 감았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윤석열을 키운 것은 범죄를 저지른 측근을 비호하는 검찰총장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언론과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문] 윤석열의 쿠데타에 가까운 도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여당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답]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위해 보낸 조국 전 장관을 대상으로 윤석열은 수 십차례 영장을 치며 항명을 했다. 이는 조국사태가 아니라 윤석열의 항명사태라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검찰의 항명에 대해 정부 여당이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권력이 가진 영향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본인의 재선이나 선거과정에서 자칫 이들에게 찍힐 경우 겪게 될 불편함이 클 것이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국민들은 검찰개혁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됐으며 더 강해졌다는 사실에 정부여당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문]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일보의 ABC 부수조작과 관련 참모들에게 강한 질책과 대책마련을 주문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참모들이나 정부 부처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추 전 장관의 생각은.
답] 사실은 2:8 법칙이라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일하는 것은 아니다. 1명의 의인이 없어 도시가 망하듯이 우리가 리더쉽을 가지고 뭐든 해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듯이 현재는 문제에 대한 부분을 인식하고 서서히 풀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 강진구 인사이트 촬영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심혁 기자
문] 초선 5인이 재·보궐 선거 패배의 원인을 조국과 추미애 전 장관에게 돌리고 있다. 민심을 읽지 못하고 180석을 마련해 준 시민들의 의지를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은데.
답] 한 달 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다. 처절하지만 어디 가서 아프다고 얘기할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단지 아픔을 치료한 후에 아팠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 국민의 의지로 태어난 정부가 아닌가.
아름다운 촛불의 눈물로 세워진 정부이기에 정부가 내세웠던 약속은 곧 촛불국민의 명령이고 그 명령 1호가 바로 검찰개혁이자 언론개혁이다. 언론과 검찰 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못했던 부분을 한탄하면서 운명이란 책을 남기셨다. 그 책은 곧 유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조국전 장관의 온 가족이 난도질을 당하고 그 바턴을 이어받아 개혁을 하나하나 진행했지만 검찰과 언론이 연관된 ‘채널A 검언유착’ 사건의 실제 발생 장소인 채널A조차 압수수색하지 못했다. 이렇게 기울어진 상황을 보면서 쓰러진 사람한테 ‘너 때문에 졌다’라고 철수까지 하는 것은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아픔이었다.
어떠한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다만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국민의 명령이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명제다. 지금처럼 탐욕을 부리는 기득권이 좌우하는 사회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혁이 우선되어야 하며 조중동과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혁을 멈춰설 이유는 전혀 없다.
문] 민주당은 현재 눈앞의 여론에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다소 지금은 불만을 살 수 있지만 거국적인 차원에서 정책을 입안해야 하지 않나.
답] 설득의 리더쉽이 필요하다. 혹은 내가 먼저 깨지거나 설령 죽더라도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면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지면서도 이기는 것이다. 어떻게 깨지지 않고 성장만을 할 수 있겠는가. 회피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 추다르크의 이미지에서 이제는 경기신문 김대훈 편집국장이 준비해 온 ‘추통령’으로서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답]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아주 가까이 모셨던 사람으로서 그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의 눈웃음 인사가 생각이 난다. 돼지저금통을 들고 다니면서 선거자금을 모아 달라고 했지만 사실 그 때는 하루하루가 딜레마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국민에게 빚진 대통령이 되라고 하시면서 허름한 차림의 시민이 꼬깃꼬깃한 돈을 쥐어 주셨는데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개혁을 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합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개혁의 딱지를 붙이면 자기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잘못된 차별로 인한 개혁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항상 익숙해져 있다 보니 당이 분열됐고 힘이 달리면 개혁이 힘들것 같아 당에 남게 되었고 그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헤어지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도 끝까지 남아서 반대를 했지만 당시 탄핵 여론이 높았고 원로들의 핍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당론에 동참하는 바람에 역사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정치인생에 있어 가장 후회스럽고 가장 큰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말로 하는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광주 도청 앞에서 3보 1배를 강행한 적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청해 주신 세종시 행복도시 기공식에 참석한 저를 발견하고는 눈으로 미소를 지으시며 인사를 건네 주셨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찾아뵙지 못한 죄스러움에 그 때 이후 시간이 멈춰진 듯 괴롭지만 말이다.
1시간 40분여 진행된 강진구의 인사이트에는 추미애 장관을 비롯해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와 경기신문 김대훈 편집국장 그리고 김두일 작가가 함께했다.